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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가레보시 Jun 30. 2023

애스터로이드 시티

상처의 치유와 꿈을 향한 도전, 웨스 앤더슨의 진가


지난 2021년,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를 보고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진가는 각본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상하게 들리실지도 모른다. 웨스 앤더슨은 그만의 몽환적인 미장센과 정적인 촬영 방식이 합쳐진 독특한 연출로 유명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독특한 연출은, 그의 각본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를 표현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비칠 때 더욱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라고. 이번에 공개된 신작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역시 그러하다. 이 영화 역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그만의 독특한 연출을 통해 볼거리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 연출은 결국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각본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를 낭만적으로 표현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끝내 아름다워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제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주제는 두 가지로 나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이유는 영화의 구조가 현실과 연극이라는 두 가지 세계가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먼저 연극 파트에 대해 이야기하여야 한다. 연극 파트의 주제는 잠에서 깨어난 후에는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도록 할까?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그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한 상처들은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히고, 인간은 결국 잠에 들어 생각하기를 그만두며 꿈을 꾼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난 후에는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좇아 나아가야 한다.

 

<애스터로이드 시티>의 연극 파트는 그 꿈의 과정을 파고든다. 꿈을 꾸려면 잠에 들어야 한다. 잠은 비유적 표현이다. 이 비유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휴식의 시간, 혹은 치유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메인 주인공 오기 스틴백과 밋지 캠밸은 저마다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종의 사건을 통해 만나 대화하고,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며 끝내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이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군의 통제에 저항하여 격리를 해제하고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떠나게 되는 과정으로 비유된다. 그 기폭제는 외계인의 등장이다. 외계인이 등장하며 격리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주인공들의 경우 상처를 공유하며 끝내 치유하는 과정을 거쳤고, 학생들은 군의 억압에 항거하였으며, 연구원들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즉, 외계인은 상처와 억압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해주는 기폭제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고, 꿈을 꾸고 있다. 그저 마음속에 숨기고 있을 뿐이다. 외계인의 등장은 그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다. 외계인이 나타나 크레이터 속의 운석을 가져가버렸을 때, 모두의 마음은 시원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상처를 공유한 사람도, 꿈을 꾸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었다. 그러자 외계인은 다시 한번 나타나, 운석을 되돌려놓는다. 그의 두 번째 등장은 격리 해제를 취소시키고 말았으나, 모두의 거센 저항 끝에 취소는 없던 일이 되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길을 향해 떠난다. 이는 상처의 공유와 꿈을 꾸는 행위가 각각 치유와 꿈을 향해 나아감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운석을 둘러싼 도시에서 벌어지는 낭만적인 나아감의 과정. 제목이 <애스터로이드 시티>인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이제 연극에서 잠시 멀어져 현실로 되돌아올 차례다. 연극 파트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넘어 새로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나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현실 파트의 주제는 그 과정을 예술가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연극을 완성하는 것이다. 각본가는 온갖 기행을 저지르면서까지 영감을 얻고자 애쓰고, 연기자는 작품을 이해하고 훌륭한 연기를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이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나타나는 나아감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파트 속 그들의 기행과 고뇌가 이루어낸 성과는, 연극 파트와 이어지며 결실을 맺는다. 우선, 극작가가 영감을 얻는 과정에서 들려온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는 외침과, 연극 본편에서는 잘려나갔던, 현실에서만 볼 수 있는 오기와 아내와의 회상이 바로 그 성과다.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는 말은, 치유하지 않으면, 혹은 휴식하지 않으면 새롭게 나아갈 수도 없다는 뜻이다. 또한, 오기와 아내의 회상은 상처의 근원과 마주 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의미들을 조합해 보자. 앞서 이야기한 연극 파트의 주제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그렇게 현실 파트와 연극 파트는 이어진다. 하지만, 현실 파트는 결코 연극 파트를 위한 들러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관객은 예술가들의 고뇌를 통해 하나의 예술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극작가의 기행은 극본을 완성시켰고, 두 연기자의 대화는 작품을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는 깨달음을 선사하면서 연극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현실 파트는 예술가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것이다. 이리 보니 기자 정신의 예술성에 헌사를 남긴 전작 <프렌치 디스패치>가 떠오른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렇게 두 가지 주제를 각본 속에 담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상처의 치유와 꿈을 향한 도전... 예술가에 대한 헌사... 솔직히 지루하지 않은가? 실제로 영화의 주제를 설명한 지금까지의 글 역시 지루하게 다가오셨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아무리 유쾌하고 위트 있는 각본이라고 하더라도, 연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은 그 지루함을 끝내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낸다. 몽환적인 미장센과, 정적이지만 그만큼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촬영으로 대표되는 낭만적 연출. 덕분에 각본은 날개를 달고 날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제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웨스 앤더슨 감독의 진가는 각본에 있고, 연출은 그런 각본의 진가를 최대로 끌어내어 묘사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결국, 각본과 연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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