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룻밤이라도, 인생은 짧다
올해 1월, 나는 교토에 다녀왔다. 일본 문화의 정수를 체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몇몇 작품들의 로케이션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케이온!>과 <타마코 러브 스토리>의 로케이션지는 꼭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교토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귀국하여 9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재감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고등학생 시절의 감상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감상이 나의 마음속에 전해졌다. 대학생이 되어 보냈던 고독한 나날들과 나의 눈에 직접 아로새겼던 교토의 풍경들이 합쳐지는 순간, 나는 인생의 의미를 재고하게 되었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인생이란 즐기는 것이라며 예찬한다. 젊기에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들은, 뒤돌아보는 순간 짧아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이색적인 춘하추동과 젊음이 술로서 어우러지는 순간의 밤에, 취해보아야 한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키워드는 춘하추동과 술, 그리고 젊음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즉 춘하추동을 은유하는 네 가지의 에피소드가 생생한 이미지로 만들어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단 하룻밤의 세계를 술에 취한 젊은이들은 그저 즐긴다. 그러한 세 가지 키워드들은 전부 인생이라는 같은 의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인생을 즐기라는 간단한 메시지이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이토록 간단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훌륭하게 시각화하여,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관객으로 하여금 체화시킨다. 사랑을 만나는 계절인 봄, 바닷속에서 기분 좋게 헤엄치는 계절인 여름, 축제의 계절인 가을, 쌀쌀한 날씨를 즐기며 손을 맞잡는 계절인 겨울은, 각각 고독에 빠진 사람들을 한데 불러 모으며 벌어지는 이백과의 결투, 책의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시간들, 사랑의 행방을 둘러싼 축제, 병마들을 물리치고 손을 맞잡는 병문안의 모습으로, 익살스럽고도 사랑스럽게 시각화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순간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춘하추동으로 이루어진 1년 같은 하룻밤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겉모습만이 사랑스러워져서는 안 된다. 그 하룻밤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마음, 내면 역시 사랑스러워져야 하고, 시각화되어야 하는 법이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하룻밤을 쏘다니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화면에 내보인다. 그리하여, 춘하추동의 계절을 쏘다니는 동안 관객은 모두의 마음을 눈동자에 아로새길 수 있다. 즐겁게 술을 마시는 아가씨의 마음은 반짝거린다. 인생을 비관하며 술을 마시는 이백의 마음은 우중충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 책의 바다를 헤엄치는 아가씨의 마음에는 출렁이는 바닷물이 차오른다. 아가씨를 위해 매워하는 선배의 마음은 입술처럼 퉁퉁 불었다. 축제를 즐기는 아가씨의 마음은 연극으로 상연된다. 축제에서 아가씨와 이어지고 싶은 선배의 마음 역시 사랑의 엔진의 작동과 함께 상연된다. 겨울바람 같은 선배의 마음을 열고자 하는 아가씨의 마음은 대모험을 떠난다. 그런 마음에 선배의 마음도 허둥지둥하며 열린다.
아가씨와 선배가 보낸 춘하추동의 하룻밤, 1년 같은 하룻밤은 마치 인생과도 같다. 동시에, 즐기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감기처럼 전염시키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비관하는 자는 깨어날 의지를 잃지 않는 한 기꺼이 행복에 전염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하룻밤의 걸음들은 깨닫게 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즐겨야만 하는 것일까? 영화의 후반, 이백은 아가씨에게 조언하듯 외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이 외침에 답이 있다. 젊은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기나길게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뒤돌아보는 순간, 그들이 지나온 순간들은 단숨에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짧은 법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즐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나길다고 느낄 수 있을 때에,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기 전에 즐기지 않는다면 손해나 다름없다. 그러한 '즐김'의 총체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사랑이야말로 젊은 시절의 불꽃이자, 앞으로 이어져갈 삶의 방향을 가리킬지도 모르는 감정이니까.
영화의 내용을 돌이켜보면, 아가씨의 걸음도, 선배의 걸음도 전부 사랑이라는 종착지를 향한 걸음이었다. 하룻밤을 즐기며 걷는 아가씨는 조금씩 사랑을 깨달아가고, 그런 아가씨를 뒤쫓는 선배는 사랑을 위해 하룻밤을 걷는다. 지금을 즐기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젊음의 상징인 것은 아닐까? 캠퍼스 라이프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감상하면서, 이 글을 작성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을 즐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 사랑을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걸어가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깨달음, 그럼에도 나는 방구석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며 이상한 글이나 쓰고 있다는 깨달음. 영화 속의 선배와 현실의 나는 딱히 지금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고,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선배는 사랑을 위해 걷는다. 나는 영원히 멈춰 있는 것 같은데. 죄송하다. 어쩌다 보니 리뷰가 아닌 넋두리가 되어버렸다. 부디 여러분들도 선배와 아가씨처럼 지금 이 순간을 즐겨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