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에 이름을 붙여 보존한다면, 보물이 딱일 거야
나에게 존경하는 영화감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그녀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야마다 나오코. 2017년,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보고 인생을 크게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을 사랑해 왔다. 그러나, 나는 최근 그 사랑에 먹칠을 할 경험을 했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곧 공개될 자신의 단편 영화 <기억의 정원>을 주제로 가진 인터뷰를 읽고, 야마다 나오코라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이해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나는 이전까지 야마다 나오코가 인간의 관계와 감정을 표현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읽은 후 나는 그녀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영겁의 시간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 <케이온!>은 그 표현의 시초가 되는 작품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학창 시절이라는, 누구나 겪은 시기를 다루는 <케이온!>을 시작으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거장이 되어갔다.
TV 애니메이션 <케이온!>은 타이나카 리츠, 아키야마 미오, 코토부키 츠무기, 히라사와 유이, 나카노 아즈사로 이루어진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 경음부 소속 밴드 '방과 후 티타임'의 일상을 다루는 작품이다. 그런 <케이온!>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대정신을 창조한 작품'.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덧붙여, <케이온!>이 만들어낸 시대정신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시청자들이 모두 작품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다면, <케이온!>은 어째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케이온!>은 시대정신을 창조한 작품이기 이전에,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케이온!>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란, 서문에서도 이야기하였던 학창 시절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 세계의 남녀노소에게 학창 시절이란 영원한 추억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케이온!>을 통해 모두의 영원을 되살려낸 것이다.
영화 <케이온!>은 그런 학창 시절의 최종장인 졸업을 다룬다. 모두가 슬퍼했던 그 시간이다. 하지만, 유이와 친구들이 아즈사에게 남겨준 '천사를 만났어!'의 가사처럼, 졸업은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함께니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때의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함께한다는 것,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어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것, 영원이 아닐까? 영화 <케이온!>은 그러한 '이어줌'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경음부에 홀로 남겨질 아즈사에게 남겨줄 선물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다. 끝내 선물은 '곡'으로 정해지고, 경음부원들은 어떤 가사를 통해 아즈사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달할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런던으로의 졸업여행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이벤트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극의 중심을 잡는 것은 아즈사를 향한 경음부원들의 마음이다. 그러한 고민의 시간 동안, 경음부원들은 조금씩 새가 되어 날아가기 시작한다.
리츠, 미오, 무기, 유이. 네 명의 경음부원들은 학교라는 둥지를 떠나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야 할 새들이다. 이를 암시라도 하듯, 네 사람은 우연히 열려 있던, 탁 트인 하늘이 수놓아져 있는 옥상을 달린다. 그렇다면, 떠난 자와 남겨진 자 사이의 연결은 그렇게 끊어지고 마는 것일까? 아니다. <케이온!>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외치는 영화이다. 경음부원들은 그 외침을 실현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아즈사를 향한 마음을 음악으로 만들어낸다. 아즈사는 사쿠라고 경음부를 방과 후 티타임이라는 하나로 만들어 준, 작고 귀여운 천사니까. 네 사람은 그런 마음을 음악 속에 눌러 담아 아즈사를 항해 불러낸다. 그리하여 떠나갈 선배들과 남겨질 후배는 이전의 추억들을 회상하면서 앞날을 기대하고, 축복한다. 끝내, 이어진다. 보물 같은 추억의 조각들을 내일의 입구 앞에 두고 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졸업은 끝이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추억들을 쌓아 올려 온 경음부는 함께였기에, 함께이기에, 함께일 것이기에 영원히 이어져있을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유이와 친구들은 졸업에 슬퍼하는 미오를 위로하며, 앞으로의 일들을 상상하며 조금씩 걸어간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그런 소녀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걸음의 주체가 되는 다리뿐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지론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녀들의 다리에서, 우리는 보금자리를 떠난다는 슬픔과 어른이 된다는 기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런 소녀들의 모습은 네 사람이 달려 나가는 순간, 새로운 미래로 달려 나가는 그 순간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앞서 나간 유이는 아즈사에게 뛰어든다. 어찌 보면, 미래를 향하여 달려 나간 소녀들의 첫 번째 종착지는 아즈사인 것일지도 모른다. 졸업을 맞은 유이와 친구들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첫 번째는 아즈사를, 천사를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곳을 훨훨 날아가게 된 선배들, 남겨진 후배 아즈사. 그럼에도 선배들은 여전히 후배 아즈사의 곁에서 날갯짓하며 이어져 있고자 한다. 졸업은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함께니까.
여기서 잠시 쓴소리를 해보고자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케이온!>의 주제는 너무 뻔하다. 아무리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다루는 주제가 변치 않는 것의 표현이라고 해도, 학창 시절은 너무나 뻔한 표현 대상이다. 학창 시절을 다루는 작품들은 <케이온!> 이전에도 만들어졌고, 이후에도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온!>은 이전과 이후의 작품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특별한 작품이 된다. <케이온!>은 모에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때때로 모에는 진입장벽이 된다. 그럼에도, <케이온!>은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나는 그 이유를 다른 모에 학창 애니메이션들이 가지지 못한 현장감과 공감을 <케이온!>은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감정과 관계라는 수단으로 방과 후 티타임의 일상을 치밀하게 조각하여, 그녀들의 학창 시절을 표현해 내었다. 그것은 관객들이 보내왔던 학창 시절의 일상과 공명한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모에라는 비일상 속의 진실된 일상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일상은 끝이 난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졸업을 맞은 유이와 친구들은 아즈사를 남겨둔 채 학교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졸업을 완전한 끝으로 장식하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이유를 멋대로 생각해 보았다. 바람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완전한 끝을 선언하지 않은 이유는, 방과 후 티타임의 졸업이 완전히 끝으로 장식되는 순간, 그녀들의 일상과 공명하였던 관객들의 일상, 삶마저 끝으로 장식되고 마는 슬픈 일이 일어나 버리고 말기 때문은 아닐까? 자세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졸업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방과 후 티타임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어질 소녀들의 일상을 우리는 화면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느끼고 살아갈 수는 있다. 방과 후 티타임의 일상과 공명했던, 우리 자신의 일상을 우리는 보내고 있으니까.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최종적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도 소녀들의 마지막 모습처럼 함께 달려 나가 보자.
총평, 혹은 야마다 나오코라는 감독에 대한 찬양
영화 <케이온!>을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케이온!>은 분명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없지만, 결국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상사이자 스승인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묻어 나오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온!>의 의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데뷔작에서부터 스승 이시하라 타츠야의 연출 기술들을 전부 흡수하며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연출 기술들과 조화시켜 내었음과 동시에, 앞으로 줄곧 표현하게 될 이야기인 결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까지 명확하게 해냈다는 것에 있다. 심지어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그러한 <케이온!>에서의 경험을 변주하여 차기작인 영화 <타마코 러브 스토리>를 걸작임과 동시에 자신의 최고작인 영화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야마다 나오코는 끝없이 성장하는 감독이다. 그녀는 작품을 거듭할수록 이전 작품에서 얻은 경험을 곧바로 차기작에 반영하여 자신의 작품관을 견고히 한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야마다 나오코라는 감독의 한계를 알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