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으로 좇아라, 양쪽 귀로 들어라, 이것이 재즈다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의 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울려라! 유포니엄> 및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영화 <리즈와 파랑새>에 버금간다. 동등한 위치에 오르지 못하고 버금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중 등장하는 연주 장면들을 전부 작화로 그려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퀄리티의 하락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전부 보여주었던 <울려라! 유포니엄> 및 <리즈와 파랑새>와는 달리, 상당한 연주 장면들이 허접한 3D 모델링으로 연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사소한 아쉬움으로 <블루 자이언트>의 평가를 크게 떨어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장르 영화는 장르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늘 생각한다. 따라서, 액션 영화에서는 액션이, 공포 영화에서는 공포가, 로맨스 영화에서는 로맨스가 충실하게 연출되어 있기만 한다면 좋은 평가를 내려줄 수 있다. 그렇다면, 음악 영화에서는 음악이 충실하게 연출되어 있기만 하면 된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그러한 면에서 합격점을 크게 넘은 명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융합과 앙상블로 만들어진 영화가 내뿜는 것
<블루 자이언트>는 이시즈카 신이치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곧바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째서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하는가?' 물론, 대부분의 일본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믹스 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실사로 미디어믹스 되는 일본 만화의 수도 결코 적지 않고, 결정적으로 <블루 자이언트>는 음악 만화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연주 장면에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 즉, 음악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믹스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임이 틀림없다. <블루 자이언트>를 실사로 미디어믹스 한다면, 배우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해 내면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미디어믹스 하고 싶다면 작화로든 모델링으로든 연주라는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애니메이터의 손으로 일일이 묘사해내야 한다.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이라는 결정에 나는 감동했다. 그림으로 그려진 만화의 전율은, 같은 그림인 애니메이션만이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악기를 프로 급으로 연주하는 배우를 찾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선했던 것은 만화에 대한 존중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만화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결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작품의 중요 요소인 음악을 연출해 내는 데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TV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의 리뷰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듯이,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의 예술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지컷인 만화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블루 자이언트>는 일방적으로 만화의 영향을 받기만 한 영화가 아닌, 만화의 특성과 애니메이션의 특성이 융합되어 만들어졌다. 즉, <블루 자이언트>는 '움직임'이라는 애니메이션만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만화만의 표현법을 받아들여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 데에 성공한 영화라는 뜻이다. 나는 그러한 만화만의 표현법을 '이펙트'라고 생각한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정지컷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물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이펙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하여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융합시킨다. 내가 항상 이야기하는, 바로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은 바로 움직임이다. 그리고, 만화는 움직임을 이펙트로 표현한다. 여기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접점은 만들어진다. 움직임이다.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을 개성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융합이라는 목적 역시 달성하기 위해 이펙트로 표현되는 만화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인물들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강조되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작화와 3D 모델링으로 만들어지는 움직임에 이펙트를 삽입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행동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펙트의 활용은, 단연 타마다 슌지의 드럼이었다. 타마다가 드럼을 내리칠 때마다 동반되는 이펙트는, 드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끝없이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재스'의 연주에 환호하는 관객들의 움직임은 조금 더 만화적이다. 관객들의 환호는 대부분 간단한 강조 이펙트가 활용된 정지컷으로 연출된다. 사실 이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활용되는 뱅크신의 일종이기도 하다. 여기서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 관객들의 환호 장면을 만화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도 연출하고, 애니메이션의 뱅크신처럼도 연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융합이라는 목적은 더욱 관객에게 와닿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용으로만 보면 만화가 애니메이션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만화에서 활용되는 움직임의 표현법을 애니메이션의 움직임 표현에 적용하기만 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루 자이언트>가 그런 영화였다면, 나는 TV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를 비판했던 것처럼 <블루 자이언트>를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을 무시한 작품'이라며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블루 자이언트>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블루 자이언트>의 움직임은, 애니메이션만 두고 보았을 때는 그다지 특출나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일반 장면에서의 작화는 평균 수준이고, 가장 중요한 연주 장면의 대부분은 작화보다도, 결코 좋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3D 모델링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럼에도, <블루 자이언트>는 음악 영화로서 훌륭한 작품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강렬하게 연출하여 새로운 움직임을 창조해 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은 영화 <블루 자이언트>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물아일체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감독은 물아일체를 색과 빛의 반사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끝내 움직이도록 하여 연출한다. 다이의 색소폰과 유키노리의 피아노가 물아일체에 이르렀을 때, 색과 빛의 반사는 그들만의 길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조금씩 일그러지며 끝내 물아일체가 살아 움직이도록 만든다. 동시에,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움직임을 거머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So Blue에서의 연주로 1년 반이라는 시간에 종지부를 찍으며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슌지의 드럼은, 다이의 색소폰과 유키노리의 피아노가 이르게 된 물아일체의 경지와 달리, 새로운 이미지가 아닌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으로 연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움직임에 확실하게 전율하였다. 때때로 예술은 보수적인 면을 보여야 할 때가 있다. 이전의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진보도 분명 필요하지만, 익숙한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보수 역시 필요할 때가 있다. 타치카와 유즈루는 그러한 진보성과 보수성을 적절하게 조율할 줄 아는 감독이다. 다이와 유키노리는 이미 완성된 천재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물아일체를 새롭게 연출하여 빠져들도록 연출하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다. 하지만, 슌지는 천재이지만 초심자이다. 따라서, 그의 재능은 천천히 개화하여, 마지막 순간 물아일체를 맞이한다.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은 그 순간을 '천천히'에 들어맞는,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움직임을 통해 보수적으로 연출한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융합과, 진보성과 보수성의 훌륭한 앙상블. 나는 <블루 자이언트> 같은 융합과 앙상블의 영화를 오래전부터 바라왔다. 이시하라 타츠야 감독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울려라! 유포니엄>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영화 <리즈와 파랑새>는 분명 훌륭하다. 모든 연주 장면들이 작화로 그려져 있는 두 작품의 경지에는, 지금까지 아무리 호평한 <블루 자이언트>라고 헤도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 자이언트>는 명작이다. 3D 모델링의 어색함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의 표현법을 창조해 내었고, 진보성과 보수성의 아름다운 앙상블을 통해 이미 완성된 천재들의 새로움과, 조금씩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천재의 노력이 최종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경지인 물아일체를 확실하게 표현해 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관객의 호응이다. 이제 관객은 융합과 앙상블의 협연으로 완성된 영화가 내뿜기 시작하는 음악을 눈으로 좇고, 귀로 들어내야 한다.
타치카와 유즈루
내가 타치카와 유즈루라는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블루 자이언트>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나는 <명탐정 코난: 제로의 집행인>에서 타치카와 유즈루라는 감독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탐정 코난: 제로의 집행인>은 정말 별로였다. 이전까지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팬이었던 내가 이 영화를 통해 팬을 그만두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액션 연출만큼은 훌륭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로 접한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의 작품은 2020년 공개된 오리지널 TV 애니메이션 <데카당스>였다. 이 작품에서 연출된 아포칼립스는, 타치카와 유즈루 감독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세 번째는 2016년 공개된 TV 애니메이션 <모브 사이코 100>이었다. 이제는 놀라움뿐이었다. 배경 동화의 진가를 구사하는 감독은 드물기 때문이다. <블루 자이언트>는 네 번째였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타치카와 유즈루는 포스트 와타나베 아유무가 될 것이라고. 어떤 장르라도 끝내 연출하고 마는 장르 마스터가 될 것이라고.
영화 <블루 자이언트>를 모두에게 추천한다. 음악의 극한을 파고드는 모습은 교토 애니메이션 이후로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