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마음, 영화라는 사랑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영화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예술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사랑스러운 결론을 내놓는 작품이다. 그 마음의 총체가 영화 속에서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항상 주제로 삼고 있는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영화가 된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 이전과 이후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을 아름답게 연출했을지언정, 그 결과물을 예술이라는 관념 속에 담아내지 않았다. 하지만,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23년 기준 그녀의 유일한 오리지널 영화인 <타마코 러브 스토리>에서만큼은 첫사랑이라는,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을 영화와 음악이라는 예술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는 영화감독이라는 예술가의 프라이드처럼 보인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예술가로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주제를, 예술이라는 관념 속에 한 번 정도 담아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영화 <타마코 러브 스토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영원히 변치 않을 마음'은 '사랑', 그중에서도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마음과 이루어지지 못하는 실연의 마음이다. 하지만, 엉뚱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타마코 러브 스토리>에서만큼은 이것은 진정한 주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타마코 러브 스토리>의 진정한 주제는, 첫사랑을 둘러싼 마음, 즉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앞으로 줄곧 표현하게 될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을 영화와 음악이라는 예술 속에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프라이드, 자존심처럼 보인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첫 번째 오리지널 영화이다. 그런 영화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예술이라는 관념을 통해 승화시키는 것은, 예술가로서 한 번쯤은 도달해보고 싶은 경지일지도 모른다. 야마다 나오코는 영화감독이자, 음악 애호가이다. 따라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예술이라는 관념을 영화와 음악으로 대변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영화와 음악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물건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화는 무엇으로 찍고, 어떻게 담기는가? 녹음된 음악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영화는 카메라로 찍은 피사체가 필름에 담기며 만들어지고, 녹음된 음악은 레코드나 카세트 같은 물리매체에 기록된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이 사실에 주목한다. 수없이 엇갈린 끝에 결실을 맺는 소꿉친구 타마코와 모치조의 사랑의 행방과, 홀로 짝사랑했던 타마코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떠나보내기 시작하는 또 다른 소꿉친구 미도리의 실연은, 영화를 상징하는 필름과 카메라, 음악을 상징하는 레코드와 카세트에 깊게 연관되어 있고, 끝내 이들과 함께한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두 소년소녀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는 과정과, 한 소녀의 사랑이 입가에서 맴돈 끝에 실연을 맞이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화의 상징과 음악의 상징은 그 과정을 함께하며 제각기 다른 세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다. 그렇게 맞이한 끝에서, 예술은 결실과 실연의 마음을 담고, 기록한다.
그 근본이 되는 것은 영화의 상징 중 하나인 필름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작중에 등장하는 타마코와 모치조의 어린 시절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그 플래시백은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연출되어 있다. 필름은 계속해서 돌아가며 타마코와 모치조의 생애를 영사하는 것으로 타마코를 향한 모치조의 마음을 처음부터 드러낸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모치조가 타마코를 좋아하게 되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도 해보았다.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어떤 연출 방법으로든 계속해서 보여주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영화라는 사실을 메타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관객을 향해 '여러분은 지금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은연 중에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요하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영화라는 사실을, 따라서 모든 이야기는 필름 속에 담겨 화면을 향해 영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결실을 맺은 타마코와 모치조의 사랑도 언젠가는 필름 속에 담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은 이미 필름 속에 담겨 작중 내내 상영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맺어 새롭게 나아가는 타마코와 모치조의 사랑도 언젠가 필름 속에 담겨 상영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엔딩의 뮤직 비디오이다. 엔딩의 뮤직 비디오는 그저 영화의 후일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실을 맺은 타마코와 모치조의 마음이 필름 속에 담겨, 훗날 상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사랑스러운 것은, 그 필름 속에 담긴 것은 타마코와 모치조, 두 사람만의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엔딩의 뮤직 비디오는 두 사람과 함께하는 친구들의 마음도, 가족과도 같은 우사기야마 상점가 사람들의 마음도 필름 속에 담긴 채 상영된다. 그 역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이다. 우정이라는 사랑, 가족애라는 사랑이다. 필름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여, 다른 상징들로 하여금 화면을 더욱 다채롭게 채울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타마코 러브 스토리>의 필름은 타마코와 모치조의 사랑의 밑바탕이나 다름없다. 영화의 또 다른 상징인 카메라와, 음악을 상징하는 레코드와 카세트는 그 밑바탕 위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을 은유하고, 도우며, 끝내 기록한다. 물론, 그 안에는 미도리의 실연 역시 함께 들어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모치조는 타마코를 좋아한다. 그런 모치조에게 이전 '카메라로' 촬영해 두었던 타마코의 모습을 돌려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만큼 상대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라보기에 좋은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가만히 있을 뿐이라면 마음은 전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미도리의 방해 공작을 받아 얼떨결에 고백의 순간을 맞게 된 모치조는 타마코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고백을 받은 타마코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해 보이고, 두 사람의 사이는 어색해지고 만다. 이에 모치조는 후회하고, 레코드는 그러한 모치조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리하여, 모치조는 음악과 함께 커피의 쓴맛을, 후회를 맛본다.
하지만, 젊음이란 조급함이다. 설탕 한 스푼이 녹는 것조차 기다리지 못한다. 이전의 고백을 후회한 모치조는 타마코와의 관계를 되찾기 위해 그 고백을 없던 일로 하자고 이야기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타마코는 섭섭하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위로해 주었던 사람이 모치조였다는 사실과 함께, 모치조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타마코 쪽에서 전해야 한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모치조의 고백을 없던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모치조를 좋아한다고 화답해야 한다. 그 사실을 타마코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는 것은 카세트이다. 타마코는 심심하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고백하기 위해 녹음한 노래가 기록되어 있는 카세트를 듣는다. 그러한 아버지의 고백은 모치조의 고백과도 같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어머니와 이어질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카세트의 두 번째 트랙에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고백이 기록된 노래를 듣고 똑같이 노래를 불러 고백에 화답하였다. 그 사실을 들은 타마코는, 그제야 깨닫는다.
어머니의 화답은 타마코의 화답이다. 모치조의 본래 계획은 실 전화기를 던져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타마코 역시 같은 방식으로 화답해야 한다. 그리하여, 음치였던 어머니처럼 실 전화기를 받아내지 못했던 타마코는, 음치임에도 노래했던 어머니처럼 끝내 모치조가 던진 실 전화기를 드디어 받아내어, 화답한다. '모치조, 정말 좋아해. 오버.'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이다. 예술의 상징들은 그 과정에서의 마음들을 내보였다. 카메라는 타마코에 대한 모치조의 마음을, 레코드는 모치조의 후회의 마음을, 카세트는 타마코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는 과정과 화답이라는 결심을 내보였고, 필름은 그러한 상징들이 아름답게 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글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미도리의 실연을 바라보지 않았다. 미도리의 실연은 카메라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그 카메라는 모치조 때와는 달리 추상적이다. 그러나, 타마코에 대한 마음을 내보이고 움직인다는 것에서는 같다.
미도리는 모치조에 대한 마음을 굳힌 타마코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떡이 목에 걸린 척을 하며 웃어 보인다. 이에 며칠 전 목에 떡이 걸려 입원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타마코는 진심으로 미도리를 걱정하는 한편, 미도리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한다. 칸나는 손으로 만들어 보인 카메라로 그런 미도리의 웃음을 촬영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된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도리가 두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응원하게 된 순간 지어 보인 웃음은, 진실된 웃음이다. 그렇기에 칸나는 다시 한번 손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미도리의 웃음을 촬영함과 동시에, 미도리에게 말해준다. '어라, 미도리. 지금은 꽤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미도리는 이에 화답한다. '고마워, 칸나.' 그렇게 미도리는 실연한다. 하지만, 그 마음을 딛고 넓은 초원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제야 미도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오랜 집착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일지도 모른다. 카메라는 그렇게 달려 나가는 미도리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바라본다.
그리하여, 타마코와 모치조가 맺는 사랑의 결실은, 남몰래 짝사랑했던 미도리가 겪게 되는 실연은 전부 예술의 상징들에 의해 필름 속에 담기고, 끝내 영화가 된다. 야마다 나오코는 음악 애호가이지만, 결국 영화감독이다. 따라서, 예술이라는 관념을 대변하기 위해 음악의 힘을 빌렸던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마지막 순간에는 반드시 음악과 함께 예술이라는 관념을 대변했던 '영화'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이는 곧, 음악은 마지막 순간 영화 속에 흡수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영화로서 끝난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진행시켜 온 다양한 예술의 상징들은, 마지막 순간 영화라는 예술에 통합된다. 그 통합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었던 필름이다. 필름은 카메라로 찍은 피사체를 최종적으로 담아내는 물건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모든 마음과 예술의 상징들을 <타마코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Film)에 담아낸다.
총평
영화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이다. 야마다 나오코는 영원을 영화 속에 기록하는 감독이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의 영원은 '사랑'의 마음, 그중에서도 결실과 실연의 마음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연을 겪었고, 결실을 맺어 보았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그 마음들을, 영원을 영화 속에 담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타마코 러브 스토리>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타마코 러브 스토리>가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최고작인 이유는, 영원의 마음을 영화를 넘어 예술 그 자체에 담아내면서도, 끝내 영화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완결시켰다는 것에 있다. 야마다 나오코는 영화감독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되돌아가야 할 예술의 고향은 영화임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영원의 마음을 예술이라는 관념 속에 담아낸다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충족하면서도, 결국에는 영화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사랑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