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를 위한 짧은 변호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어째서 미시마 유키오는 죽었는가?’ 달리 말하면, ‘어째서 미시마 유키오는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여기서 잠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자신의 삶, 더 나아가 만인의 삶을 예술과 일체화한 하나의 예술 작품을 완성하기를 꿈꾸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는 그의 일본적인 변주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의 예술, 혹은 미(美)를 자신의 삶과 일체화한다는 것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그러나 자신을 만인으로 번지도록 하여 끝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문학 예술로서 완결시킨 마르셀 프루스트와는 달리,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을 일본이라는 공간, 혹은 관념으로 번지도록 만들며, ‘풍요의 바다’는 문학 예술로서가 아닌 ‘미시마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으로서 완결된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 ‘어째서 미시마 유키오는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가 보기에 전후의 일본은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텅 빈 공간으로서 자신이 추구했던 관념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눈>의 마츠가에 키요아키는 일본미의 현인으로서 사랑을 추구하며 모든 아름다움을 뜨겁게 발산한 다음 천천히 식어가고, <달리는 말>의 이누마 이사오는 마츠가에 키요아키가 발산하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일본미의 정점에 서있는 천황의 상징, 태양을 관철하며 할복한다. 이후 일본미와 마츠가에 키요아키의 의지는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새벽의 사원>의, 동성의 육체를 추구하는 잉 찬은 절대적인 군주가 미의 대리자로서 여전히 존재하는(이는 미시마 유키오가 숭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국의 공주이고 환생의 증거 역시 갖고 있지만, 그곳은 일본이 아니고 그녀도 일본인이 아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추구하던 일본의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은 정작 일본이라는 공간을 이탈해버리고 만다.
이후 잉 찬 역시 뱀에게 물려 죽고, <천인오쇠>가 시작된다. 그동안 전쟁은 끝이 났고, 미국의 밑에서 일본은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고 있었으며, 그 배경 위에서 살아가던 야스나가 토오루는 혼다 시게쿠니에 의해 목격되어 세 번째 환생자로서 마츠가에 키요아키를 이을 인물처럼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미라는 관념은 더 이상 일본이라는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츠가에 키요아키의 영혼이 일본인조차 아닌 잉 찬으로 환생했다고 생각된 순간부터, 혹은 전쟁이 시작되어 일본의 공간이 조금씩 미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츠가에 키요아키라는 일본미의 현인은 더 이상 일본에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종전과 함께 확실시되었다. 미국의 점령과 함께 일본이라는 관념의 대리자로서 진정한 화신으로 숭배되었던 천황은 평범한 인간이 되었고, 그를 지키던 무사들, 군인들은 자위관(自衛官)이라는 괴상한 존재가 되었으며, 이는 주군이냐 아니냐를 두고 맹렬히 대결한 끝에 목숨을 바쳐 자결하는 무사도(武士道), 혹은 일본미의 정점이 결국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본의 진정한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등장한 야스나가 토오루는 마츠가에 키요아키의 환생자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그의 환생을 끝없이 목격해 오던 혼다 시게쿠니의 존재와 더 닮아있는 인물이다. 평생을 바쳐 ‘목격해 왔다고’ 생각했던 마츠가에 키요아키의 영혼이 이어지지 않았음을 선고받은 혼다 시게쿠니와 자신이 환생자가 아니라는 선고와 함께 앞을 ‘볼 수 없게 된’ 야스나가 토오루는 분명 닮았다. 이는 일본미의 현인이 사랑했던 대상이자 환생을 관장하는 불교 교리의, 혹은 관념의 화신으로 거듭난 아야쿠라 사토코(<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최종에 이르러 불교의 육도와 일체화되어 일문의 명복과 성불을 빌던 타이라노 토쿠코와도 닮아 보인다)에 의하여 확정된다. 애초에 마츠가에 키요아키라는 현인은 존재했는가? 그것은 사실 마음먹기에 달려있던 것이 아닌가? <봄눈>에서도 언급되는 원효 대사의 해골물 이야기처럼, 마츠가에 키요아키의 영혼은 마음먹기에 따라 끝없이 환생하는 일본미의 현인일 수도, 애초에 아무것도 아닌, 오히려 처음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일본이라는 공간을 이탈한 <새벽의 사원>부터 마츠가에 키요아키라는 영혼, 혹은 관념은 흔들리고 있었으며, <천인오쇠>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해골물이 되어버렸음은 자명하다.
이것이 바로 미시마 유키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일본이라는 공간을 떠나버린 일본미라는 관념을 되살리기 위하여 미시마 유키오는 현대 일본이라는 공간에서는 전대미문의 행위로 전락해 버린(?) 무사로서의 할복을 거행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2.26 사건의 황도파들을 선망했다. 그들이야말로 일본의 화신 천황을 절대자로서 되살리고자 하는, 이를 위하여 목숨조차 바칠 수 있는 진정한 무사였으니까. 그렇게 <우국>과 <달리는 말>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했고, 천황을 허수아비로 세운 군인들만이 남아 전쟁을 일으켰으며, 끝내 일본이라는 공간에 더 이상 무사도란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말한다.
“자위대가 일본의...... 일본의 근본(大本)을 고쳐서 나쁠 것은 없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느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다. 아무도 이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 근본이 왜곡되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자위대가 일본 왜곡을 바로 고쳐야 한다. 그래서......”
미시마 유키오에게 왜곡이란 무사도의 실종이며, 따라서 무사의 후예인 자위대가 궐기하여 황도파의 염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는 외친다.
“제군은 무사이지 않은가. 제군은 무사이지 않은가. 무사라면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어째서 지키는가? 어째서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위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에 조아리는가? 헌법이 존재하는 한, 제군은 영원히 구제받지 못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미국이 만든 현대 일본 질서의 근간인 헌법을 부정해야만 한다. 그리해야만 진정한 일본의 무사도가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제군이 일본을 허수아비로 만든 헌법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제군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와 함께 들고일어날 자는 없는가?”
“...... 아무도 없는가. 좋다! 무(武)는 칼이다. 나의 사명에 대한...... 것이다.”
“이제 제군이 헌법 개정을 위해 들고일어나지 않겠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다. 이것으로 자위대에 대한 나의 꿈은 사라졌다. 이제 여기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겠다.”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천황 폐하 만세!”
미시마 유키오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고 끝내 그는 할복하여 ‘자신만의’ 무사도를 완성한다. 그렇다.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었다. 관념이 사라진 일본이라는 공간에서 추구하던 미의 극치는 더 이상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은 2.26 사건을 회고하며 말했다. “만일 형님을 정말 신으로 섬겼더라면 어떻게 반란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나는 이 말을 이미 일본이라는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미시마 유키오에게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천황은 미시마 유키오의 예술관을 성립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일본을 지배한 것은 천황이 아닌 천황의 권위를 내세운 무사(혹은 귀족)였다. 미나모토와 후지와라, 호죠의 카마쿠라 막부, 아시카가의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 이는 현대에도 비슷하다. 자유민주당은 자민 막부라는 별칭과 함께 수십 년 동안 장기 집권하며 일본을 이끌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을 무사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예술의 한 순간으로서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문학가였지만 자신의 존재도, 변화한 시대도 넘지 못했다. 허약한 육체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보디빌딩의 과정에서 받아들였다고 생각되는 무사도는 그럼에도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던 <금각사>의 미시마 유키오를 <우국>과 <달리는 말>의, 죽음을 숭상하는 미시마 유키오로 변화시켰다. 끝내 회귀주의자로 변모한 미시마 유키오는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미시마 유키오마저 나는 긍정하고 싶다. 예술가로서 항상 예술과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에 치열하게 부딪혔던 미시마 유키오의 삶을 나는 긍정하고 싶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난 마르셀 프루스트를 영원히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달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이름과는 정반대의 황량한 공간 ‘풍요의 바다’, 혹은 현대 일본이라는 공간의 진정한 풍요, 아름다움을 향하여 떠난 미시마 유키오의 결단을 나는 긍정하고 싶다. 그의 이론에는 무수한 오류가 존재했지만 예술은 이론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미시마 유키오는 예술의 한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역사의 한 순간이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과거 일본의(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아름다움을 예술로서 펼쳐내고 죽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듯 현재를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예술가는 서로를 예술가로서 존중했다. 에드워드 H. 카는 말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