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시리즈 2기

사랑과 시간에 대한 소고: 나를 위해서가 아닌 너를 위해서

by 나가레보시


나는 라이트 노벨을 그다지 읽지 않는다. 오타쿠적 사고를 만화를 통하여 읽거나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보고 듣는 것은 익숙하지만, 오로지 문자만으로 읽어 받아들이는 것은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문자만으로는 오글거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라이트 노벨의 분파 중 하나로 일반 소설과 라이트 노벨의 중간 지점을 지향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라이트 문예’ 계열의 소설은 정말 가끔씩 읽는 편이기도 하다.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나 이치죠 미사키의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 또는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같은 작품들 말이다(<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를 제외하면 전부 별로이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높게 평가하는 라이트 문예 작가가 있다면 바로 요네자와 호노부이다(사실 <흑뢰성>으로 나오키상까지 수상한 2020년대부터는 온전한 라이트 문예 작가로만 볼 수도 없게 되었다). 대표작인 ‘고전부 시리즈’와 ‘소시민 시리즈’는 전권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 글에서는 후자, 즉 최근 완결된 ‘소시민 시리즈’의 TV 애니메이션 2기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 속에 담긴 시간의 흐름이 전하는 사랑에 대한 오랜 기다림의 끝이 될 것이다.


사랑과 시간에 대한 소고 1

2025년 6월, 칸베 마모루 감독의 TV 애니메이션 <소시민 시리즈>의 2기가 완결되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와 ‘소시민 시리즈’라는 작품을 알게 된 지도 벌써 8년 가까이 된 만큼, 오랫동안 나의 삶을 구성했던 존재들이 불쑥 떠나간다는 것은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렇다. 작년에 나는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과 함께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소시민 시리즈’의 끝을 읽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시민 시리즈’의 대전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세 달이 지나 <소시민 시리즈 2기>가 방영을 시작하고, 또다시 세 달이 지나 방영을 끝마쳤을 때, 비로소 나는 대전제의 존재를 눈치챘다. 20년의 궤적으로 쓰이고 그려진 사계절과 주인공 오사나이 유키의 존재는 ‘흘러가는 시간은 영원히 뒤쫓아야만 한다’라는 대전제로 동치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주인공 고바토 조고로는 20년의 궤적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 고1, 고2, 고3의 3년이라는 시간을 흐르며 언제나 사건의 중심에 서는 오사나이 유키를 뒤쫓는다.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이제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최종편의 엔딩에 이르러서도 오사나이 유키는 교토로 떠나버리며 미로와도 같은 문제만을 남기고, 고바토 조고로는 이를 뒤쫓아야만 한다.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에서 오사나이 유키와 고바토 조고로, 두 소시민은 자문한다. ‘우리는 정말 만날 운명이었을까?’ 이에 대하여 독자이자 시청자인 나는 생각해 보았다.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알 수 없을지언정, 적어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쫓고 쫓기는 운명으로 묶이게 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오사나이 유키는 언제나 앞서 있고, 고바토 조고로는 언제나 뒤처져 있다. 결국 고바토 조고로는 안간힘을 다하여 오사나이 유키를 뒤쫓아야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사나이 유키의 존재가 흘러가는 시간과 동치 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고바토 조고로는 오사나이 유키를 영원히 붙잡아 세울 수 없으며, 필사적으로 뒤쫓아 겨우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갈 수만 있게 될 뿐이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흘러가는 시간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결국 우리 스스로, 필사적으로 뒤쫓아 겨우 나란히 서서 함께 흘러가야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시간을 필사적으로 뒤쫓아 겨우 나란히 흘러가야만 하는 우리의 삶은 오사나이 유키를 필사적으로 뒤쫓아 겨우 나란히 걸어야만 하는 고바토 조고로의 삶으로 비유되어 있다. 요네자와 호노부가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시민 시리즈’라는 작품에 담아낸 오사나이 유키와 고바토 조고로의, 사계와 3년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대전제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사랑과 시간에 대한 소고 2

TV 애니메이션 <소시민 시리즈>의 1기는 미묘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채택한 TV 애니메이션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 것을 넘어 효과적으로 활용해보고자 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기는 했지만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절반 정도의 성공을 이룬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좋은 구도를 포착하려고 하는 시도는 보이지만 정돈되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추리 과정에서 다양한 초현실적 공간으로 워프 하는 연출은 작품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악수로 다가왔다. 1기 분량에는 일상 추리 파트도 꽤 존재하는 만큼 같은 원작자를 공유하는 故 타케모토 야스히로 감독의 걸작 TV 애니메이션 <빙과>라는 해답지를 참고했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끝에 그다지 좋은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빙과>는 필연적으로 지루해지기 쉬운 일상 미스터리 장르에서 전자를 강조하고 후자를 이에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는 연출로 일상 속의 미스터리를 표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소시민 시리즈> 1기는 일상과 미스터리를 처음부터 완전히 합쳐버린 상태에서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초현실적 공간을 소환하는 바람에 오히려 두 요소 모두 붕 떠버리는 듯한 감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완전히 별로인 작품 역시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의 분위기를 어떻게 현재를 배경으로 다시 그려낼 것인가’라는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고, 좋은 구도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한 카메라적 시선을 통한 알맞은 인물들의 포착법으로 서스펜스를 살려내는 몇몇 장면들의 연속은 결국 나로 하여금 <소시민 시리즈>의 1기를 최종적으로는 어느 정도 괜찮은 작품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소시민 시리즈> 2기는 1기의 최종적인 인식의 연속이자 확장이며, 완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드디어 <소시민 시리즈>는 걸작으로 거듭났다. 애니메이션은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영상에 속하는 만큼 카메라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고, 그중에서도 애니메이션에 속하는 만큼 작화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소시민 시리즈 2기>는 두 요소가 완전히, 아름답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존재를 되새겨야 한다.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최대 강점은 역시 광활한 배경을 웅장하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소시민 시리즈>는 이에 완전히 반대되는 작품처럼 보인다. <소시민 시리즈>라는 애니메이션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시민, 광활함과는 정반대의 조그마한 주인공들로부터 펼쳐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 보았다. 조그마함을 부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의외로 광활함일지도 모른다. <소시민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구도는 멀리서 피사체를 포착하는, 인물보다도 배경이 더 크게 담기게 되는 롱 숏이다. 광활한 배경 속의 조그마한 인물, 이보다도 소시민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구도가 또 있을까? 오사나이 유키와 고바토 조고로의 추리는 얼핏 보면 꽤 웅장한 여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모토에서도, 추리의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들은 전부 사적인 것들이고, 설령 거대한 범죄처럼 보이는 사건이더라도 결국 사적인 복수를 위하여 기획된 것이거나 이용된 것이었으며, 사건의 발생지 역시 주인공들의 거주지인 기라시를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광활한 배경 속 조그마한 존재들이다. 그 모든 것이 담긴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롱 숏 구도 속 두 소시민의 모습은 역시 언제나, 한없이 조그맣다.


그러나 동시에 오사나이 유키와 고바토 조고로, 두 사람은 소시민이라는 가면을 자처하면서도 어떻게든 뚫고 나오려는, 거대해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물들이기도 하다. 호혜 관계를 성립하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오사나이 유키는 사적인 복수심을, 고바토 조고로는 추리의 과시욕을 언제나 참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클로즈업은 이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광활한 시네마스코프 비율에 가득 찬 두 사람의 행동들은 어찌 보면 거대해 보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복수를 위하여 움직이는 오사나이 유키의 모습은 철두철미해 보이고, 추리력을 과감하게 뽐내는 고바토 조고로의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모습들은 착시라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이미 광활한 배경 속에 조그맣게 담긴 두 소시민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클로즈업된 모든 행동들에는 거대함이 아닌 광기 어린 오만함만이 남는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에서 고바토 조고로는 나카마루 도키코라는 새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것은 오만이다. 자신은 소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 두 사람의 연애는 누구나 구가하는, 평범한 일상 속의 그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바토 조고로는 이전의, 오사나이 유키와 맺었던 호혜 관계의 일상을 잊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받아줄 수 있었던, 완벽한 메커니즘의 일상을 나카마루 도키코와는 설계할 수 없다. 클로즈업되는 것은 바로 그 오만이다. 기저에 깔린 수많은 계산들을 아무 말 없이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기괴한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원했던 고바토 조고로는 평범한 일상의, 누구나 알고 있는 관계를 원했던 나카마루 도키코를 마치 샌드백처럼 이용한다. 클로즈업되어 화면 속에 담기는 그녀를 위한 추리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다. 토마토는 그녀를 위한 토마토인 것처럼 클로즈업되지만 사실은 그의 욕망을 위한 것이었다. 고바토 조고로는 욕망을 감추고 소시민이 되고자 했다. 그렇다면 그는 소시민이 되지 못했다. 클로즈업되어 드러난 것은 그의 욕망뿐이었으니까.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역시 그러하다. 고바토 조고로는 같은 반의 학생인 히사카 쇼타로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잡아 그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탐정 역을 맡았던 과거를 회상한다. 물론 그 역시 오만이며, 클로즈업된다. 사건의 목격자 후지데라 마코토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고바토 조고로에게 더 이상 명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클로즈업으로부터 우리가 목격한 것은 탐정 역에 심취하는 고바토 조고로의 광기 어린 흥분과 그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후지데라 마코토의 위화감뿐이었다. 그 순간 이전에 등장했던 우리노 다카히코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에서 우리노 다카히코는 자기 과신이라는 오만으로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히야 유토에게 뒤통수를 맞게 되고, 오만하게 선을 넘어 연인이었던 오사나이 유키로부터 철저하게 복수당하고 만다. 고바토 조고로 역시 자기 과신이라는 오만으로 함께 범인에게 농락당한 자신과 오만하게 선을 넘어 히사카 쇼타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 자신을 회상한다.


현재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우리는 오사나이 유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사나이 유키 역시 소시민이 될 수 없다. 우리노 다카히코와 연인 관계가 되어 평범한 일상을 보내려고 했던 오사나이 유키도 결국 타인이 자신보다 앞서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에서 오사나이 유키는 우리노 다카히코가 자신에게 멋대로 키스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앞섰다는 이유로 오만하게 행동하던 그를 더 이상 돕지 않고 철저하게 농락하여 복수한다. 그 모습은 전부 클로즈업된다. 오사나이 유키가 우리노 다카히코를 농락하는 장면은 오만했던 그를 단죄하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뒤처지는 모습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함을 내뿜는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시민 시리즈>에서 오만함은 일종의 광기처럼 연출되고, 우리노 다카히코를 향한 단죄 역시 그것에 가까웠음을 생각해 보면, 오사나이 유키의 철두철미함은 결국 우리노 다카히코를 위한 단죄가 아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 자신의 욕망을 해방한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 이중성은 요우미야 히나의 훌륭한 연기로 한층 아름다워졌다. 치유적인 목소리 그 아래에 담긴 비웃음과 광기의 감정 연기, 아마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노 다카히코를 향한 복수를 끝내며 오사나이 유키는 고바토 조고로와 재회한다. 그는 우리노 다카히코와 달리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다. 함께 먹으러 간 구리킨톤에 대한 장황한 설명도 전부 웃는 얼굴로 받아준다. 그 모습은 롱 숏과 클로즈업 두 기법으로 담긴다. 이제야 광활한 배경 속의 조그마한 두 사람이자, 소시민이 될 수 없지만 결국 소시민인 두 사람이라는 본래의 주제는 공통된 화면 속에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구리킨톤을 언제나 양보할 수 없는 오사나이 유키와 궁금함을 언제나 참을 수 없는 고바토 조고로의 호혜 관계가 다시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면서 기괴한 관계가 두 사람에게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관계로 작용할 때 비로소 소시민이 될 수 있는 오사나이 유키와 고바토 조고로의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 그 순간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롱 숏과 클로즈업은 소시민이라는 공통의 피사체를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시간은 현재로 되돌아간다.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오사나이 유키는 자신의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만 움직였던 이전과 달리 고바토 조고로를 치고 달아난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사적이기도 하다. 오사나이 유키에게 있어 그를 위한 복수는 이제 나를 위한 복수나 다름없는 것이 되었으니까. 그 모든 과정은 롱 숏으로도 담기고, 클로즈업으로도 담긴다. 이들은 오사나이 유키의 연인을 위한 감정의 분출과 히사카 에이코의 동생을 위한 감정의 분출이라는 사적이고 소시민적인 행동의 포착이기도 하며, 소시민이라는 표어에 담긴 사랑과 시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사나이 유키는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지나며 자신만큼 타인을 위할 줄 알게 되는 변화를 겪었다. 사랑과 시간의 긍정적인 흐름인 것일까? 범인 히사카 에이코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의 범행 역시 롱 숏과 클로즈업의 힘으로 사적이고 소시민적인 것임이 밝혀지지만, 히사카 에이코는 사랑과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의 시간 동안 오사나이 유키는 언제나 앞섰다. 고바토 조고로는 언제나 쫓았다. 겨울 역시 오사나이 유키는 앞선다. 오사나이 유키는 고바토 조고로보다 앞서서 사랑을 고한다. 그것은 그를 지키기 위한 모든 행동들이 화면 속에 담기며 비언어적으로 표현되고, 언제나 나의 차선이었다는 마지막 대사와 함께 언어적으로도 표현된다. 사랑과 함께 흐른 시간 동안 오사나이 유키는 먼저 변했고, 먼저 떠나간다(초현실적 공간에서 롱 숏으로 포착하여 암시하는 것이 포인트). 그렇다면 고바토 조고로는 늘 그랬듯이 그녀가 남긴 수수께끼를 따라 변하며 쫓아야 한다. 물론 늘 그랬듯이 그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사나이 유키는 누구에게든 앞서고 싶어 한다. 고바토 조고로는 누구에게든 드러내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욕망을 위하여 서로의 존재를 내어준다. 비로소 소시민의 삶은 이루어진다. 나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닌 너의 복수를 위해서. 나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닌 너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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