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뚝딱뚝딱 자기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이름은 이미 지어놓았다.
그 이름은 ‘지옥’.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밝았고
밝게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를 통해
세상 밖 천사들이 너그러이 속삭였다.
그러지 말아라
너는 할 수 있다
너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느냐
그럴 수 있다
네 상황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너는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시끄럽구나, 시끄러워
세상 밖은 너무나도 시끄럽구나
나는 내 세상 만들기 바쁘니
썩- 물러가거라.
이윽고 참혹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시뻘겋고 칠흑 같은 암흑이 공존하는 세상이.
나 자신아,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너를 지켜주겠다.
주변에서 칼날을 내세우거든
나를 앞세워라.
나는 언제든 총을 가지고 있고 또 겨누고 있으니
방아쇠를 당기라는 명령만 해다오.
세상 참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리 살고 보니 이런 좋은 일도 다 생기는구나.
경사로다 경사야.
세상 밖 천사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노래한다.
그들의 찬가는 세상을 더 밝게 만들었고
그런 세상을 천국이라 불렀다.
흥, 너희들은 나를 아프게 해 놓고선
잘만 노래 부르며 사는구나.
하지만 이젠 괜찮다.
네 곁엔 내가 있지 않느냐.
수많은 천사들이 천국을 아름답게 꾸미며 살 때
악마는 나의 부정적 상상을 곱씹어먹으며
더욱 자기 세상을 구체화시켰다.
잔혹
슬픔
분노
분열
그리고 죽음.
악독한 악마의 웃음에 빠져있으면서도
자꾸만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천사들의 노랫소리에
나는 조금씩 정신이 깨기 시작했다.
아, 내가 만든 것은 악마가 아니구나
지옥이었구나-
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