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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검 작가 Jul 16. 2024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던 남자

<5> 사실은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편의점 알바에 익숙해지고 있을 때쯤, 조금씩 단골손님도 눈에 익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원룸으로 둘러싸여 있는 편의점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 근처에서 거주 중이신 분들을 제법 많이 만났는데 여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분도 가끔 오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바로 오늘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고자 하는 어느 한 오빠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는 당시 나도 대학생 때였는데, 나와 비슷하게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어느 한 청년이 편의점에 방문했었다. 그는 잠시 편의점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휴대폰 좀 빌려줄 수 있을까요?
제가 폰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사람이 크게 무서운 줄 몰랐던 20대 초중반 때쯤이라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내 폰을 빌려줬었다. 지금 내 기억으로는 편의점 안에 전용 전화기가 있었어도 카운터 안에 있었던 터라 외부 손님을 카운터 안에 들이기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내 폰을 건넨 것이다. 그는 내게서 폰을 건네받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듯했다. 상대방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고 그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유유히 가버렸다.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은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게 일을 했었다.



야, 너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폰을 빌려주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있나, 없나.


나랑 교대할 사람에게 전달 사항 전달 후 간단하게 낮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려주자마자 내가 들은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게 꼭 나쁜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후, 그날 퇴근 후였나 며칠 뒤였나. 내가 대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스타그램보다 페이스북이 유행할 때였는데 그 페이스북 메신저로 연락이 하나 왔다. 누구지 싶은 마음에 어플에 접속해서 프로필을 확인해 보니 내 폰을 빌려달라던 그 남자였다! 세상에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연락해서 미안해요.
사실 아까 보고 호감이 생겨서 폰을 빌려달라고 한 거였어요.


그렇다. 그는 내 번호를 알기 위해 내게 휴대폰을 잃어버린 척하며 내 폰을 빌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정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내게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또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었던 터라 그렇게 연락을 잠시 주고받는 동안에도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면 차단하면 되지, 이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오빠(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나보다 연상이란 걸 알게 됐다)하고는 얼마나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사적으로 따로 만나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연락을 몇 번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그 오빠와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이후로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 사이에 나는 나대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갑자기 그 오빠에게서 또 한 번 DM 연락이 왔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요즘 잘 지내?
폰 바꾸면서 연락처가 날아가는 바람에…
그래서 말인데 혹시 네 연락처 좀 다시 알려줄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에게 아무런 용건도,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할 말도 없고 해서 더 이상 연락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연락 온 그의 말에 나지막이 미안하단 대답을 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을 주고받은 목록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누가 될지 모를, 나의 미래의 남자친구나 남편을 위해서라도 남겨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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