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설계하는 심리루틴

4부. 통합-삶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마음 사용법

by 나검하랑

19. 과거를 미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방법


밤에 잠들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몇 년 전 일이 떠오른 적 있으신가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천장을 보고 있다가 그때 했던 말, 그때 하지 못했던 말, 그때 선택했던 길.

어느새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집니다.

자려고 누운 건데, 어느새 과거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밤을 보냅니다.



미술치료를 하다 보면, 내담자들이 종이 위에 뭔가를 그리다가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거 잘못 그린 것 같아요. 다시 해도 될까요?"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우지 말고 그냥 두세요. 틀린 선 위에 새로운 선을 얹으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되기도 하니까요.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오늘의 선을 계속 얹어가다 보면, 처음엔 실수처럼 보였던 그 선이 오히려 그림의 일부가 됩니다.

완성되지 않은 스케치를 미완성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아직 그려지고 있는 중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어떤 장면이 지저분하고 엉켜 보여도, 그것은 실패한 그림이 아닙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금도 계속 그려지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니 중간 과정을 보며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과거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시간이 좋았다고 억지로 느끼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선이 거기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팠으면 아팠다고, 후회스러우면 후회스럽다고, 그냥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억지로 지우려 할수록 종이는 더 상합니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일종의 평화입니다. 더 이상 그 선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준 상처.

그것을 계속 들여다보며 곱씹는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그림 위를 자꾸 손으로 문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번지고 흐려져서 결국 원래 그림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을, 혹은 그때의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이해 없이도 붓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니까요.


나아간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등에 지고 걷는 것도 아닙니다. 그 스케치를 손에 가볍게 들고, 다음 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이전 페이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페이지가 존재합니다. 그 시간이 나를 만들었고,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버텨준 덕분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때의 나를 조금은 다독여 주어도 좋습니다.

잘 그렸다고.. 충분히 애썼다고..

그 말 한마디가, 과거와 화해하는 가장 조용하고 따뜻한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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