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뮨 Sep 16. 2019

가끔만 보고 싶은 그대

제발 가끔만 와주세요

한 때는 그분을 아주 자주 뵌 적이 있었다. 비싼 건 아니라도 무료배송이라서, 어머 이건 있어야 해! 라며...

그분은 다름 아닌 택배 아저씨다. 미니멀 라이프를 한답시고 거실에는 테이블밖에 없지만, 속속들이 파헤쳐보면 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1년 전에 이사를 오면서 참 많이도 버렸다. 결혼 10년 차가 넘어가니 멀쩡한 게 없었고, 사이즈가 이쪽 집에 안 맞다 보니 헐값에 그쪽 집에 주고 와야 하는 물건들도 꽤 되었다. 기존 5톤의 이삿짐에서 2.5톤으로 줄여서 왔지만, 어느새 붙박이장마다, 수납장마다 꽉꽉 차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세제, 칫솔, 치약, 샴푸, 테이프클리너 등이 떨어지지 않게 미리 준비했었던 것 같다. 떨어진 후에 주문해도 그다지 상관없는데 큰일 날 사람처럼 말이다. 다행히 휴지는 이사 올 때 선물 받은 게 아직도 많다. 근데 사람의 심리라는 게 웃기다. 휴지가 마지막 롤일 때는 정말 아껴 쓴다. 정말 집을 탈탈 털어도 두루마리 휴지가 그것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_상상은 여기까지ㅋㅋ) 엄청 아껴 쓴다. 근데 욕실 수납장에 두루마리 휴지가 10개 정도 뙇! 진열되어 있다면, 자연스럽게 많은 양을 거리낌 없이 쓰는 것 같다. (나만 그런가?)



아직 전세에 살고 있고 (서울 전세는 너무 비싸다) 올해에는 차도 일시불로 바꿨고, 조금 남아있던 대출도 털어버렸다. 난 책 사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돈 먹는 프로배움러이다. 어쨌든 기본적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자식으로서도 도리를 해야 하고, 또 가끔은 여행도 가고 싶고... 모든 것을 다 만족시킬 수 없으므로 나는 소비를 제한하기로 한다.



이사를 하면서 당근 마켓에서 이것저것 판 금액만 100만원이었다. 만 원짜리 팔아서 100만 원 모으기란 정말 힘들었다. 이사 준비보다, 당근 마켓 때문에 더 바빴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짐을 정리하고도, 사람은 금방 또 잊는 존재이다. 우리는 너무 필요 이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살면서도, 계속해서 결핍에만 매몰되어있다. 또 이미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리되지 않아서 반복해서 또 사거나, 제대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수많은 물건들이 각자의 집에 넘쳐흐른다.

 


뭔가 싸게 사면 뿌듯하고, 할인 적용을 잘 받았기에 마땅하다고 느꼈는데 만원 미만의 돈들이 모이다 보면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쇼핑 앱에 접속을 안 하기로 했다. 사실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기도 하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쓸 시간이 부족하니 어디서 무슨 세일을 하든지 말든지...ㅋㅋ 점점 쇼핑앱을 안보다 보면 또 무던해진다. 택배 기사님을 엘베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지만, 우리 집 초인종은 가끔 눌러주셨으면 좋겠다. 


그건 전적으로 내가 하기 나름이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워야 사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