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렇게 반가운 소리였나
환. 승.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도저히 가방을 뒤로 메고 있을 수가 없었다. 통로가 꽉 차서 뒷문 앞에 있던 사람들은 내렸다가 타기를 반복할 정도였다. 조금 힘들지만 가방을 매너 있게 앞으로 매고 있다가 이리저리 휩쓸리고 말았다. 오늘 버스 기사님이 와일드하셔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어디선가 "하차입니다"라는 소리가 나는데 이게 누구 카드의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방 앞주머니에 지갑을 넣어놨기에 내 카드의 소리인지, 다른 사람이 재빨리 내리기 위해 번개 같은 속도로 카드를 찍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확인할 길이 없는 게 답답했다. 나는 한번 더 환승을 해야만 하는데 혹시라도 내 카드가 찍혔는데, 내가 한번 더 찍으면 요금이 더블로 청구될 것이고 그렇다고 안 찍고 내렸다가 다음 버스에서 환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씽큐베이션 멤버들과 밥을 먹으면서 환승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는데 (30분 이내에 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버스를 연속 타면 안되고, 5번까지 가능하다는 것 등등) 나름 환승의 경력에 스크레치가 나는 기분이랄까 (별~~~ㅋㅋㅋ)
내 카드가 맞다고 해도 내가 의도하게 찍은 것이 아닌데 나는 아직 1번째 버스에서 하차할 차례가 아니었다. 2번째 버스가 곧바로 온다면 다행이지만 간격이 10분 정도 나는 버스도 있으므로 카드를 찍은 지 30분 이내에 다음 버스를 타지 못하면 환승이 또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마 일반적인 분들은 '아 머리 아파!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냥 요금 한번 더 내고 말아!'라고 하실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알뜰한 것도 디퍼런스 검사에서 주된 특성으로 나왔기에 단지 버스 환승요금뿐만 아니라 돈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환경도 영향이 있을 것이고, 나의 주요 특성도 낭비 자체를 괴로워하기에 이것이 역동을 일으키면서 짠순이 모드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왜 그렇게 궁상으로 살아요?'라고 하기보다는 '당신은 절약에 최적화되어있으시군요'라고 바라보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아껴야겠지만 말이다.
다시 버스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고민 끝에 가방 앞에 지갑이 찍혔다는 가정하에 하차할 때 카드를 찍지 않고 내렸다. 예상대로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를 환승했다. 카드를 찍을까 말까 고민하느냐고 30분이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까지는 체크하지 못했는데 마침내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환승입니다!!
오예~~~~
아까 난 소리는 내 가방 앞에 있던 카드가 찍힌 소리가 맞았던 것이고, 다행히 30분 이내에 다음 버스로 환승했기에 추가 요금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 제일 허무한 게 짱구를 굴려서 30분마다 환승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1분이 지나서 요금이 발생하는 순간이므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환승입니다!!라는 멘트에 속으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