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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Oct 19. 2019

평창에서 너를 만날 줄이야

반갑지 말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던 어느 날 즉흥적으로 머리핀과 고무줄 2개를 샀다. 사실 계속 필요하긴 했는데 내 반경 안에 파는 곳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날 기분도 그렇고 해서 5,000원의 사치를 부렸다. 4,000원짜리 핀은 맘에 드는 반면에 헬스 할 때 자꾸만 머리가 추노처럼 맥없이 풀려서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해서 산 고무줄 2개는 힘이 없었다. 일부러 사장님께 여쭤보고 단단한 녀석으로 달라고 했는데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하나는 끊어지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전화기 줄같이 생긴 500원짜리 남은 한 개로 버티고 있지만 힘이 세지는 않아서 운동을 할 때마다 몇 번이나 머리를 고쳐 묶는지 모른다. 



지난주 평창에 연수를 갔던 이틀째 날인 토요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해도 도착지에서 집으로 이동하면 시간이 소요되므로 도저히 운동시간이 계산되지 않았다. 토요일에는 헬스장이 7시에 닫기 때문이다. 전날 몇 잔의 와인과 맥주 때문에 속이 무지 안 좋았지만 산책이나 하자는 심정으로 3명이서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지금껏 실내에서 러닝머신만 뛰던 내 앞에 트랙이 보이니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운동하면서 한 번도 밖에서 뛰어본 적이 없었기에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잠은 몇 시간 자지 못했지만 서울과는 다르게 공기가 너무 상쾌해서 나도 모르게 트랙을 몇 바퀴 돌게 되었다. 물론 전날의 활동으로 여기저기가 쑤시고 숙취로 인해 계속적으로 뛰지는 못하고 뛰다 걷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그런데 뛰다가 머리끈 하나를 발견했다. 수천 명이 드나드는 연수원에서 주인을 찾아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 챙겼는데 기존에 내게 있던 머리끈과 다르게 너무 쫀쫀한 게 아닌가! 게다가 사용한 흔적도 거의 없는 새것 같아 보였다. 다른 것이라면 찝찝해서 남의 것을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한 번에 끊어져버리거나, 남은 하나도 힘이 없어서 맘에 들지 않은 참에 새것 같은 머리끈이라서 얼씨구나 했다.



내가 액세서리 가게에서 사장님께 여러 가지를 여쭤보고 구입한 머리끈보다 평창 트랙에서 줍은 머리끈이 더 맘에 들다니 너무 웃겼다. 오늘 아침 헬스를 할 때도, 머리를 묶고 있는 지금도 평창 머리끈을 사용한다는 게 갑자기 웃겨서 글까지 쓰게 되었다. 잃어버린 주인은 속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주인을 찾기엔 어려워서 내가 쓴 것이므로 너무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일주일째 다른 머리끈은 사용하지 않고 평창에서 겟한 머리끈만 주야장천 쓰고 있다. 머리끈을 계기로 어쩌면 꼭 내가 계획하고 내가 노력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나에게 더 큰 것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은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는 모든 시스템의 원리를 알턱이 없는 미비한 존재이므로 내가 설계한 것 이외의 기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스스로의 상황을 제한하거나, 안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을 때 현실을 제대로 깨달을 수도 있지만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낙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 힘 이외의 다른 것들의 덕을 볼 수도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여지를 생각해두면 어떨까. 사업을 할 때도 그렇고, 시험을 볼 때도 운이 작용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너무 최소한으로 바라보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가능성으로 봐주며 응원할 수 있는 최고의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해보자.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아끼지 않는다. 나와 가장 친하고, 믿어주는 나 자신이 되어주자.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으므로. 





디퍼런스 전문가이자 청소년지도자 김윤정

https://blog.naver.com/nager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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