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게 어쩐지 좀 망설여진다. 40하고도 1살 먹은 사람에게 애착 물건이 있다는 것이 낯부끄럽기도 하고,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되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냥 나인 걸 뭐~ㅋㅋ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애정결핍이 좀 있었다. 첫째인 언니와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는 늦둥이 딸로서, 소위 안 낳으려다 낳은 막내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이 먹고사니즘에 바빴던 엄마와 아빠는 농사일에 치여 살아야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나를 케어해 줄 체력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계시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엄마품에서 그렇게 오래 못 지낸 탓인지 손가락을 빨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였다. 오른쪽 엄지손가락만의 맛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다른 손가락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오롯이 오른쪽 엄지손가락만 빨았기 때문에 늘 퉁퉁 부어있었고, 크기가 다르기까지 했었다. 아니 여기까지도 창피한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나원참...ㅋ
오른손은 빨고, 왼손으로는 베개커버를 만지작 거려야 잠이 오는 특이한 버릇을 갖게 되었다. 그 베개가 아니면 잠이 안 올 정도로 만지는 것에 집착이 심해져갔는데, 영원한 것은 없듯이 해어질 때로 해어져버린 베개커버를 버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정확히 언제 버려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손을 빠는 것과 베개커버를 만지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단체로 1박을 하거나 했을 때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에 끊을 결심을 했었던 것 같고, 완전히 끊은 것은 고학년 때쯤인 걸로 기억한다) 단체로 수련회를 갔을 때 친구들의 놀림을 방지해야 했기에 손가락을 빠는 것도, 베개커버를 만지는 것도 끊게 되었는데...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결혼 혼수로 계절별 이불을 샀는데, 그 당시에는 디자인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모아놓은 자금 안에서 모든 물품을 해결하는 게 중요했으므로 그냥 이불집에서 추천하는 적당한 이불을 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이불 끝을 매만지는 버릇이 또 생기기 시작했다. 근데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손으로 만지는 게 아닌, 발가락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다들 빵 터지실 거 같은데, 나는 용기를 내서 하는 고백임을 다시 한번 알아두시길 부탁드린다ㅋ)
내가 평발이라서 그런지 구두를 신은 날이나, 많이 걸은 날은 발도 피곤하고, 종아리도 붓는다. 한때는 남편이 잘 때까지 주물러주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지친 남편에게 매일 들이밀기는 좀 민망했다. 그런데 발로 이불 끝을 매만지다 보면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변태 아님 주의)
이불은 이미 사망한 지 오래다. 도저히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버렸고, 남은 건 이불의 축소판인 베개커버 2장이다. 잘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우리 가족들도 이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신기하게 생각하고, 빅웃음 대잔치이므로 웃으셔도 좋다. 배게커버가 2개라서 번갈아가면서 세탁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다행히긴 하지만, 많이 해져서 걱정이다.
유일하게 남편과 함께 즐기는 취미가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다. 바닷속에 들어가서 그 세계를 보는 것은 너무나도 황홀하고, 여유만 되면 자주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긴 하지만, 하고 나면 엄청나게 피곤하다. 다이빙 중간에 숙소에 들어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다이빙을 나가는 시스템인데, 그때도 너무나 필요한 게 저 베개커버이다. 밤에 잘 때도 물론이다. 혹여라도 깜빡한 날은 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래서 무료 짐이 없는 티켓을 끊었을지라도 저 베개커버는 꼭 넣는다. 티셔츠를 한 장 빼더라도 말이다. 저게 있어야 발이 편하고, 잠을 잘 잔다는 걸 아는 남편은 챙겼는지를 꼭 확인한다.
12년 된 베개커버, 이미 낡고 뜯어졌지만 널 버리지 못해. 나의 숙면을 도와주니까 말이야..ㅋ 12월에 다이빙 갈 때도 물론 데리고 갈꺼란다. 더 이상 튿어지지 말고, 잘 버터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