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가치
오래된 나의 습관 중 하나는 알뜰함이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것도 있고, 결혼 후에는 각종 카페나 블로그에서 고수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한 것도 있다.
1. 물 아끼기
이 닦으면서 쓰지 않는 물 흘려보내지 않기, 샤워는 군대처럼 짧은 시간 안에 하기, 세탁기는 급속으로 돌리기, 설거지할 때도 순서대로 최대한 물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한다.
2. 도시가스 아끼기
겨울철 온 집안을 따뜻하게 하지 않는다. 너무 더운 온도는 되려 피부에도 좋지 않고, 답답하므로 잠자는 방 정도만 돌리거나 한겨울이 아니라면 이불속에 뜨거운 물을 핫팩 주머니에 넣어두면 금방 따뜻해진다. 보리차를 끓임으로써 수증기로 온도를 높인다. 수면잠옷, 수면양말은 필수다.
3. 에어컨 아끼기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천정형 시스템 에어컨인데, 안방 평수가 워낙 작다. 최대한 선풍기로 버틸 때까지 버티고, 정말 더운 한여름에는 안방에 에어컨을 돌리고, 그 방에서만 머문다. 거의 원룸 수준으로 작은 방이라서 금방 시원해진다.
4.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
옛날에 살던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없었다. 장 조금 보려고 차를 타고 한참을 가기도 뭐하고, 남편은 주말에 대형마트 가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동네 마트에서 딱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두 손에 들고 올 수 있을 만큼만 산다면 비용도 자연히 줄어든다. 무거운 생필품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그때그때 소비하는 식재료만 동네 마트를 사용했었다. 지금은 동네 마트, 대형마트, 재래시장이 주변에 다 있는 동네이므로 그때그때 다르다. 평소에는 동네 마트에서 들고 있을 만큼만, 대형마트에서 3만 원에 5,000원 할인권을 준다면 가끔 가고, 과일을 박스채로 살 때는 청과물 도매시장이 가까우므로 그곳으로 가서 온누리상품권을 이용해서 산다.
5. 압축 쓰레기통
종량제 봉투를 아무 생각 없이 버리다 보면 금방 차기 마련이다. 최대한 분리수거를 잘해서 일반 쓰레기의 양을 줄이고, 압축해서 눌러주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아주 딴딴하게 쓰레기가 담긴다. 물론 여름에는 작은 종량제 봉투를 사용해 자주 버리는 편이 더 낫긴 하다.
6. 발목 늘어난 양말
남편의 양말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그러므로 한 짝을 버려야 한다고 해서 못 신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래 신다 보면 발목이 느슨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베란다 창틀을 닦거나, 현관 바닥을 닦는 용도로 걸레와 같이 분류해서 사용한다.
7. 환승
난 환승을 이용해서 루트를 짠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몇 개가 있는데, 그게 30분 이내로 가능한 일들이라면 더더욱. 적절히 전철과 버스를 섞어가며 타고, 미션 수행을 하듯 일을 보고 30분 이내 다음 버스를 타고, 또 이동한다.
8. 책은 할인받아서 사고, 중고로 판다
책은 최대한 할인쿠폰 신공을 발휘해서 사고, 깨끗한데 더 이상 보지 않는 책들은 과감히 중고 서점에 되판다.
9. 영화할인
영화는 딱 한 달에 2편 이내로 보려고 한다. 요즘은 바빠서 한 달에 2편도 못 보기도 하지만, 조조할인 요금에 신용카드 할인을 받으면 한편에 2,000원~3,000원에 보는 편이다.
10. 할부는 안 해요
나는 빚을 싫어하기 때문에 할부도 싫어한다. 웬만하면 신용카드값도 전달 월급에서 미리 빼놓는 편이다. 무언가 큰 비용을 지출을 해야 하면, 할부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모아서 사는 편이 마음에 편하다. 그래서 올해 14년 된 차를 바꾸면서 과감하게 일시불로 결제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알뜰하게 되었을까?
사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돈 문제로 힘든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그게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를 다가왔고, 돈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소비보다는 저축을 먼저 하고 난 다음에 남는 것으로 소비를 하면서 지출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를 모르면 궁상이라고 본다던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핵심은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에 있다. 나는 매달 지출되는 공과금과 생활비를 통제해서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고 싶은 것인데, 이것의 핵심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면 갈등이 발생하고, 돈으로 인한 불통이 일어난다.
서로가 어떤 어린 시절을 지냈는지, 돈에 대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돈으로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서로가 대화가 된다면 더없이 좋다.
우리 부부도 불통의 시간을 오래 지냈다. 나는 가정을 위해 절약하고, 인내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서 빚을 힘겹게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생각은 또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많은 대화 끝에 우리는 아끼되 1년에 1~2번은 우리만의 여행을 가기로 했고, 내가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끼되 남편에게까지 돈으로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양가 가족모임에 함께 하는 횟수가 많아서 우리만의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다이빙을 간다. 물론 다이빙 갈 때도 최저가 비행기 티켓을 끊는 나이지만....ㅋㅋ
돈 문제로 부딪힘이 있다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당신은 왜 안 따라주는 거야?라고 할 것이 아니라)에 집중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하는지 핵심을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알려면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알아야 하고, 어디에 가치를 두는지 가치관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