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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Aug 01. 2019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몇달 째 나와의 싸움 중..

나는 삼 남매 중에 막내딸이다. 언니와 오빠와 나이 차이가 좀 나기에, 내가 초등학교 때 오빠는 중학생, 언니는 고등학생이었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급식이 없었으므로 도시락을 1인당 2개씩 싸 갖고 다녔다. 그럼 도대체 도시락이 몇 개야?? 적어도 5개는 되었나 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삶은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는 것을 뜻한다. 때마다 심고 솎아주고 묶어줘야 하며 , 적절한 물과 거름을 줘야 한다. 어지간히 손이 가는 게 아니다. 그뿐이랴 돌도 골라내야 하고, 잡초도 뽑아줘야 한다. 시골에서는 부지런히 살아도 할 일이 태산이다.


농사일을 마치고 와서도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 밥을 지어야 하고, 집안을 청소해야 한다. 바지런한 아빠가 많은 부분을 도와주시긴 했지만, 고된 생활 속에서 도시락을 싸는 게 어지간히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춘기 시절에는 반찬 투정이 끝이 없었고,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으로 전쟁을 치루기 바빴다.


먹을 것이 그다지 풍성하지 않은 시골살이였다. 간식이라고 해봤자 겨울에는 군고구마, 무 깎아먹기 정도였었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구경도 못하고 자라다가 외할머니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갔다 오셔서 사 오셨을 때 처음 보고, 맛보았는데... 서울에서 자란 지인들은 늘 바나나를 늘 먹고 자랐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과는 달리 볶음 김치, 감자 반찬, 무말랭이 무침, 시래기나물 등 거의 밭에서 거 둔 것들이 반찬이 되기 십상이었다. 계란을 입힌 분홍 소시지, 참치 같은 것은 어쩌다 가였다. 요즘처럼 밀폐력이 좋지 않은 반찬통이 많아서, 손수건으로 꽁꽁 싸도 국물이 있는 반찬들은 흐르기 마련이었다. 책에 물이 들기도 하고, 냄새가 진동을 하기도 해서 집에 와서 난리난리를 쳤던 중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도 아니었고, 여자여자한 성격도 아니었던 엄마는 우리 비위를 다 맞춰주는 게 아닌, 그럼 먹지 마! 하고 상을 치워버리는 스타일이셔서 반찬이 맘에 안 들어도 꾹 참고 먹어야 했고, 꾹 참고 손수건에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어느덧 나도 결혼 12년차이니 웬만한 요리들은 뚝딱한다. 하지만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미션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먹으면 이래저래 시간이 다 가버리니, 도시락을 빨리 먹고 그 시간에 쉬고 싶다는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회사에서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았고, 점심시간에라도 본인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데, 어떻게 안 싸줄 수가 있겠는가?


나름 꼼수를 부려서 저녁밥을 할 때 양을 넉넉히 한다. 유리 밀폐 용기에 갓 지은 뜨거운 밥을 싸놓으면, 그다음 날 점심에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반찬도 하는 김에 넉넉히 해서 미리 싸놓는 걸 선호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침잠이 너무너무 많이 때문이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을 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또다시 올빼미형으로 돌아가서 자꾸만 늦게까지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 자면, 아침에는 정신을 못 차린다. 전날 저녁에 도시락을 준비해놓은 날은 과일 간식 통과 도시락을 담아주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 전날 외식을 했거나, 밥을 홀랑 다 먹은 날, 남편의 귀가가 늦은 날, 귀찮아서 아 몰라~이러고 잔 날이다. 물론 아주 피곤한 날이나, 피치 못할 날은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도 하고, 밖에서 약속이 있는 날은 패스해도 되지만 대부분의 날은 나와의 싸움이다. 반찬의 고민과 저녁에 해놓고 잘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서 할 것인지를 매번 고민하는 나를 보면서 도시락 5개를 쌌던 엄마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살림하는 주부가 되어보니,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티가 안 나고 반복되는 과정이 힘들다. 농사와 장사 등 안한일이 없이 바쁘게 살았던 엄마는 얼마나 고되셨을까? 이미 새벽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와서 또 아침과 도시락을 싸느냐고 얼마나 잠이 부족하셨을까? 그것도 모르고 흐르는 반찬 쌌다고 성질머리 내던 철없던 사춘기 시절의 나를 반성하며...


오늘도 이 밤에 도시락을 싼다. 그 시절에 그렇게 풀 반찬이 싫다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집의 대부분은 야채다. 아직도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철마다 나오는 야채들을 열심히 먹어야 한다. 다행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시골 반찬이 더 좋아졌고, 남편은 한 번도 반찬투정 없이 싹싹 다 먹고 와서 감사하다.



몇 달째 나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도시락 싸기 미션... 언제쯤 익숙해지려나;;;



#엄마 #도시락 #아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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