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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Sep 19. 2019

와! 진짜 졸꾸러기네

그게 뭔데?

Q. 30일 글쓰기의 오늘의 주제는 [내가 자주 듣는 말]이다. 내가 자주 듣는 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즘에 유독 많이 듣는 말이다. 왜일까?




2019년부터 변화되고 싶어서 데일리 리포트를 쓰고 있는데 오늘로써 262일째이다. 그리고 전혀 하지 않던 운동을 8월 5일에 드디어 결심했고 오늘로써 45일이 되었다. 더불어서 05:30분 미라클 모닝과 남편 도시락 싸기도 순항 중이다. 30일 글쓰기는 매일 아침 6시에 주제가 주어지면 24시간 이내에 글을 쓰고 인증하면 되는데 오늘은 12번째 글 되시겠다. 이런 나를 보면 "진짜 졸꾸러기시네요"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졸꾸러기란, 졸려도 꾸준히라는 뜻으로 지치고 힘들어도 그냥 꾸준히 하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내가 원래 아침형 인간이고, 운동을 잘하고, 계획에 따라 철저한 사람이었을까? 전혀 아니다.



나는 잠이 아주 많고, 게다가 갑상선 항진증을 10년 넘게 앓고 있어서 피곤이 몰려오면 남들보다 더 피로를 극심하게 느낀다. 하지만 바뀌고 싶다면 꾸준히 노력하는 졸꾸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힘들어도 그냥 하는 것뿐이다. 어떤 노하우도 없다. 솔직히 45일째인 운동도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 매일매일 너무 힘들다. 고작 45일째이지만 수월하다는 느낌은 없고, 숨이 차오르고 얼굴에서 땀이 폭발할 때면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약속한 것들을 지켜야 하고, 66챌린지달팽이챌린지(습관형성을 위해서 66일동안 미션을 수행하며 인증_ 인스타그램 #66챌린지 #달팽이챌린지 검색)에서 함께 하고 있으니 포기할 수는 없기에 크게 숨 한번 몰아쉬고 하는 것뿐이다.



과거에 졸꾸했던 기억이 무엇이 있는지 추적해보면, 일단 초등학교 6년 내내 일기를 썼다. 내적 동기가 아닌 "엄마"가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재우지 않았기에 외적 동기에 의해서 일기를 6년 내내 썼다. 또한 피아노 학원도 7살 때부터 17살 때까지 다녔고, 아파서 학원을 스킵하거나 하는 건 엄마에게 통하지 않아서 기어서라도 갔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 억지로 학원을 가는 게 의미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토론 주제를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나는 정말 죽어도 싫은 게 아니라면 밀어붙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물론 그게 정말 하기 싫어서 치가 떨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옛날에는 그것이 돈 낭비라고 생각했고, 애가 싫다는데 왜 보낼까?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이 없다면 난 또 금방 뭔가를 그만두는 아이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뭔가를 맡으면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를 통해 배웠기에 성인이 된 지금도 꾸준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상관은 없다. 일기, 피아노 학원 말고도 동네 청소하는 애향단, 교회와 합창단 피아노 반주를 하기 싫은 적도 많았지만 맡은 이상 책임을 다하라고 해서 그 고비들을 가까스로 넘겼던 것 같고, 그 훈련은 지금의 나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그때도 했는데 왜 못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물론 여기에 성향도 한몫을 하기는 한다.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어떻게 하든 쟁취하고픈 욕구가 뿜하며, 만약 그 목표를 방해하는 것 (그것이 사건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있다면 가만두지 않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 있다. 아무래도 이런 성향의 사람은 마음을 먹었다 하면 그 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라는 강한 신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Grit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반면에 이런 목표지향적인 것을 힘들어하는 성향도 있다. "뭘 그렇게 이기려고 드니... 그냥 어느 정도 중간만 하면 되지,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건데? 널 보면 내가 다 지친다"라고 느끼는 유형도 있다. 이 유형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기를 싫어하고, 극단적으로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타입이다. 그러니 목표지향적인 유형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목표지향적인 사람과 함께 할 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늘 중간만 추구하고, 평화만 외치다가는 그저 그런 인생이 될 수밖에 없으니, 때로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에게 적당한 자극을 받는 것도 좋은 동기유발이 될 것이다.


나는 아침에 헬스에 가서 속도 10.0으로 러닝머신을 3킬로 달린다. 사실 5킬로를 달렸었는데 힘들어서 3킬로로 줄인 것이다. 속도 10.0은 나에게는 조금 버겁긴 하다. 기존에는 더 낮은 속도로 5킬로를 달렸었는데, 속도를 10.0으로 올리고 난 뒤 도저히 힘들어서 3킬로로 줄였지만, 이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키로수를 점점 늘리고 싶은데 거꾸로 줄인 것이니 말이다. 러닝머신 3킬로, 매트 맨몸 운동 40분, 사이클 10킬로를 탔었는데 오늘은 사이클 대신 러닝머신 3킬로를 한번 더 뛰었다.



헬스장에서 유일하게 아는 그녀가 마침 걷기를 하고 계시길래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8.5 속도로 뛰었다. 10.0에 비하면 8.5는 너무 수월했다.


그녀:  어머머... 나는 못 뛰겠던데...

나   :  아... 네^^;;; (뛰는 중이라 길게 대답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녀:  그래도 젊은 사람 따라서 한번 뛰어볼까?

나   :  네^^ 뛰어보세요~~

그녀:  (5.6으로 뛰신듯했다) 어머~~ 나 오늘 살 빠지겠다. 오호홍홍~~

나  :  네^^ (뛰는 중에는 위험할 수 있어서 말을 길게 못 한다)

그녀:  어머~~ 나중에 내가 커피 살게. 덕분에 10분 넘게 뛴 거 같다. 나 못 뛰었었는데...

나  :  네^^ 저는 3킬로 다 뛰었네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보지 않아서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고, 함께하는 공동체가 중요하다. 내가 262일 동안 데일리리포트를 쓰면서 쓰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을까?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날은 인친들의 댓글로 힘이 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혼자 했으면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고, 자극도 주고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 성향에 따라서 도전을 즐기는 자도 있고, 버거운 자도 있겠지만 그 목표 설정은 각자 자신에게 맞게 하면 되는 것이다. 6을 했을 때 적당히 좋고, 만족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9를 해도 아쉬운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자기의 기준에서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아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인가 보다'라고 인정해줄 때 적당한 동기부여도 가능하고, 적당한 목표 설정도 가능할 것이다. 목표지향적인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너무 과도한 목표를 부과하면 번 아웃될 수도 있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반면에 목표지향적인 사람에게는 조금 더 도달하기 어려운 것을 제시함으로써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해준다면 빠른 성장을 이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리더로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알아야 하고, 파트너로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알면 훨씬 더 시너지가 날 수 있다.


나의 성향이 아닌, 상대방의 성향에 맞춰가면서 알맞은 동기부여를 해주고, 함께 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움츠렸다가 더 멀리뛰기하는 개구리처럼 다시 뛸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졸꾸러기가 되고 싶다. 단순히 나만의 도전으로 그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미래의 나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싶다.




디퍼런스 전문가이자 청소년지도자 김윤정

https://blog.naver.com/nager128


https://www.instagram.com/66challenge_kim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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