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30일 글쓰기는 매일 아침 6시에 그날의 주제가 공개됩니다. 그래서 주어진 주제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이지요. 혼자 제약 없이 글을 쓸 때는 생각지도 못한 주제들이 공개되기도 하고, 그날 밤 12시까지 마감이라는 제한이 글쓰기의 근육을 키워주기에 글쓰기의 습관을 형성하고 싶은 분들에게 강추하는 시스템입니다^^ 질보다 꾸준히 양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주제에 맞게 글을 쓰다 보면 저도 어느덧 글쓰기 실력이 늘어나겠죠?
오늘의 주제는 Q. 당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오늘 몇 달 만에 영화를 봤다. 한 달에 2번에 있는 신용카드 할인 혜택을 몇 달은 못써먹은 것 같아서 일부러 시간을 냈다. 로코는 싫어라 하는 남편이니 익숙하게 통로의 자리로 미리 예약을 하고 혼영(혼자 영화)을 즐긴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를 받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에서 메모를 해뒀는데 마침 영화에서도 일맥상통하는 얘기가 나와서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다.
김래원과 공효진 주연의 "아주 보통의 연애"에서 직장 상사로 나오는 김래원과 공효진은 나이를 공개하게 된다. 김래원은 85년생이다. 공효진도 85이긴 하지만 빠른 85년생이라고 선을 딱 긋는다. 1월생이라며^^
내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그렇게 따졌었다. 79년생과 빠른 80년생은 엄연히 다르다며! 언니라고 하라는 둥, 어린것들이 뭘 알겠어? 라며 고작 몇 달 차이를 가지고 어린아이 취급을 하곤 했었다. 참 유치해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빠른 79와 79가 친구, 79와 빠른 80이 친구인 상황에서 다 같이 만나게 되면 빠른 79와 빠른 80이 친구인가? 아닌가? 하는 족보의 꼬임이 골치 아팠었다. 어릴 때에는 유독 나이에 민감했었고, 행여라도 후배가 예의가 없다거나 반말을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흥분하곤 했었던 것 같다.
서른이 넘고서 유독 젊은 청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었다. 이름이 아닌 호칭을 불러야 하는 시스템이라서 반말은 물론 안 했고, 나이는 내가 10살 이상 많지만 일의 협조를 구하거나 컨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나이는 잊은 채 잡 배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서로 존칭을 쓰곤 했었다. 그런데 이 계기로 인해서 10살 이상 어린 청년들한테 존댓말 하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특히 뭔가를 배울 때는 한참 어릴지라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나이의 서열보다는 내가 뭔가를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생님으로서 존칭을 쓰는 것이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나보다 어린 선생님들이 더 많기에 좋은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자원봉사로 성격유형 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2시간의 수업시간 내내 조용했던 내향적인 여학생이 있었다. 외향형의 학생들은 서로 말을 하려고 하지만, 내향형의 경우에는 적절하게 질문을 던져줘야 그나마 균형감 있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선생님들의 질문에만 조용조용히 대답하던 그 여학생이 수업을 마친 후 남긴 소감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가 한참 NO재팬 운동이 핫했던 시기였는데, 함께 자원봉사하시는 선생님께서 사비를 털어서 간식을 사 오셨는데 그게 포카리스웨트였다. 수업시간 내내 조용조용했던 그 여학생의 소감문 맨 마지막 줄에 이렇게 쓰여있었다. "포카리스웨트 일 본 거예요" 수업 준비에 정신이 없던 우리들은 나중에서야 '아차!' 했을 뿐 미쳐 발견하지 못했었다. 물론 그 여학생도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긴 했지만, 나에게는 많은 소감 문중에서 그 마지막 한마디가 엄청 크게 다가왔다. 내향형이라서 일일이 표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생각은 다 있다. 즉시 표현을 안 할 뿐이지.
25살이나 어린 학생의 한마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그 이후로 조금 더 세심하게 모든 상품을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많은 어른들이 말을 하지만, 사실은 아는 것을 제대로 발언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기회를 묵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다 철이 없고,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누구에게든 배울 점이 있으므로 존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유익한 습관일 것이다.
독서모임인 씽큐베이션에서는 20대부터 50대까지가 나이의 구분 없이 동등하게 팀원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나도 어느덧 40대가 소위 꼰대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다양한 연령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20대는 지금의 고민이 있고, 지금의 40대는 또 그 나름의 걱정이 있을 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경제적 풍요로움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더 살기 팍팍해지고, 끊임없는 경쟁으로 힘든 것은 지금의 20 대일 수도 있으므로 꼰대 마인드로 '너희들이 뭐가 힘들어?'라고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싶듯이 나도 남을 존중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