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면접인가, 소개팅인가?
인사담당자의 직업병
학창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찾아오는 남자 고객은 “사장님”, 여자 고객은 “사모님”이라고 부르게 되어 있었다. 난 무슨 일이든 꽤 열심히 하는 편이라 살갑게 고객들을 맞이하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의 “업무”에 흠뻑 빠졌는데 직업병처럼 내 말투에 남아서 아빠한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했다.
보통 기업인사팀은 채용 전담직원이 따로 있지 않다. 채용을 담당하면서 근로계약도 하고, 입 퇴사자 관리를 한다던지 그냥 채용/교육/복리후생 모두 한 직원이 하는 경우도 있는데 채용 전담직원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입/퇴사자 많다는 증거다. 예전 회사는 한 달에 100명 정도 퇴사를 했는데 100명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300명의 면접을 봐야 하고, 그렇다면 매일 10명의 면접을 공장처럼 봐야 한다.
이런 직업을 오래 하다 보니 직업병이 당연히 생기는데 특히 소개팅을 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원자들을 대하듯이 질문하고 나도 모르게 평가를 하는 거다. 그러면서 표정은 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상대방의 대답에서 허점을 찾아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 회사는 왜 그렇게 오래 다니셨어요? 다른 거 해 볼 생각은 안 하셨어요?”
“방금 취미가 스포츠라고 하셨는데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가요,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가요?”
“앞으로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대답을 못하시는 것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연애를 하는 중에도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계속해서 질문해 나가면서 평가를 하려고 애썼는데 그것 때문에 남자 친구가 화가 난 적이 많았다. 넌 왜 나를 직원처럼 대하냐, 자꾸 떠보는 질문 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사실 무의식 중에 나의 직업병이 도진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 전 구독하고 있는 다른 브런치 작가님을 글을 읽으면서 내가 남을 가르치려고 들고 평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내 업이다 보니 자연스레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30대 초반에는 결혼하라 잔소리하던 부모님은 요즘은 별말씀이 없다. (포기하신 듯..) 가끔 엄마가 너 만나는 남자 없니? 하시면 시크하게 눈을 흘기면서 나 직업병 있어서 안돼,라고 대답한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설득력 있는 변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