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이야기합시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6편)
꾸바씨 여기 와서 이거 설명 좀 해주세요
급여를 담당하는 동료가 나를 불렀다. 나보다 열 살이 어린 이 직원과 내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00 씨'이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이 직원은 계산기를 두드린다.
맞네요, 이해했어요.
직급을 사용하지 않는 외국계 회사가 많다. 호칭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데 서로 동등하게 대화하기에 하고 싶은 말을 굳이 돌려 말하지 않게 되고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국내 많은 기업들도 00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려는 변화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씨'라는 호칭이 아랫사람이나 동료에게는 허용이 되나 아직도 상사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 버릇없게 보이는 문화 때문에 '님'을 선택하는 회사가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외국계 회사의 상사들은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00 씨라고 불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나 제니퍼, 피터 등의 영어 이름은 호칭을 붙이지 않고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편하다. 하지만 이 영어 이름 뒤에 굳이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나의 동료 '제시'에게 다른 부서 직원이 '제시 씨'라고 불러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 외부업체와 일을 할 때 나에게 직급을 물어보는데 "그냥 꾸바씨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하면 당황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 한 에이전시가 전화를 해서 꾸바 팀장님이라고 날 부르길래 "이왕 마음대로 직급 붙여주실 거면 상무나 전무라고 불러주세요"라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직급=사회적 지위는 옛날 말이 된 지 오래다. 예전 회사에서는(여기도 외국계였다) 비상식적인 직급 선물 놀이를 했는데 1년에 한 번씩 승진을 시켜줘서 내가 입사할 때 대리였던 여섯 살 어린 직원이 내가 2년 6개월 후 퇴사할 땐 차장이 되었다. 나의 경우는 경력직임에도 입사 후에 직급 없이 00 씨라고 부르다가 6개월 후에 이사님이 손수 건네는 '대리'가 박힌 명함을 두 손으로 받았을 때부터 동료들이 손뼉 치며 축하해 주며 대리라고 불러주었다. (당시에 6개월 만에 이사님이 인정해준 사람은 최초라며 날 추켜세웠으나 그렇다고 급여가 오른 것도 아니었다)
높은 직급은 내가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모티베이션을 올리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급여를 많이 올리지 않고도 노고를 칭찬할 수 있는 '값싼'방법이다.
반대로 직급이 없다는 것은 왠지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외부에서 차장이었던 사람이 이 회사에서 새파란 사원들과 같이 이름을 부르게 되면 하향평준화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름이 불려지는 것은 결코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어린 직원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이 상관없이 포용하는 문화를 배운다. 다만 이런 분위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입사를 해서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일단 '내'가 아무 경력도 없는 남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싫다는 것이다. 과연 직급이 나를 높이는 도구가 될까? 직급은 attention을 줄 뿐, respect을 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