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생활을 물어보는 회사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5편)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보고 난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다. 어떤 식으로 말을 해야 할지 혼자 대화를 연습한 후 자리를 박차고 그녀의 자리로 갔을 때 날 보며 웃는 그녀를 보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너 귀걸이 이쁘다.
저 작은 칭찬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듯했다. 그녀는 항상 내가 액세서리를 고르는 센스가 좋은 것 같다는 말로 칭찬을 마무리를 하고 자신이 보낸 이메일을 켜서 나에게 보여줬다. 나는 네가 이렇게 해줬으면 했거든. 그리고는 엑셀 파일을 하나 열어서 왜 그런지를 설명해 주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이었고 잠시 이성을 잃고 뛰쳐나간 내 두발이 민망했다.
모든 외국인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small chat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방법을 잘 안다. 난 아직도 저녁 초대를 받게 되면 밍글링(mingling :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그냥 사담을 나누면서 어울리는 것. 외국 영화 같은 데서 손에 샴페인 잔 들고 옆에 사람이랑 인사 나누는 그런 분위기다)이 익숙하지 않아 잘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심각한 미팅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상대방의 기분을 확인하는 how are you?로 시작하는 대화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요즘 상태, 사적인 이야기를 3분에서 5분간 하는데 테이블을 돌아가면서 모두 한 마디씩 하면 30분도 더 지나간다. 자기가 키우는 개가 아픈 이야기를 하고 주말에 남자 친구와 여행을 간 이야기를 한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시지, 뭘 이렇게 인트로가 기나 했었는데 한번 해보니 상대방이 지금 어떤 기분으로 미팅을 참석했는지 알고 나니 오히려 잘 풀리는 느낌이었다. 미팅이 끝난 뒤에 내 매니저는 너 기분이 어때?라고 묻기도 했는데 미팅이 잘 풀리지 않아도 내 기분이 어떤가 돌아보는 시간에 어느 정도 다음번 미팅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 정리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 회사는 공식적인 커피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이 시간은 그냥 개인적인 휴게시간이 아니라 업무시간에 못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인데 처음에 이것이 익숙하지 않아 커피잔만 만지면서 어색한 웃음만 짓기도 했다.
평소엔 그렇지 않은데 오늘 유난히 뾰족한 말로 공격하는 직원이 있다면 커피 브레이크 때 찾아간다. 무슨 일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고 오해를 풀 수 있다. 우리 모두 공사를 구분하며 일하면서도 사적인 일들이 회사 업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에 나의 가족 이야기, 남자 친구 이야기도 소소하게 나눌 수 있다. 물론 대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공유하지 않는다.
내가 다닌 외국계 회사가 모두 다 그렇지는 않다. 미국계 회사를 다닐 때는 분위기가 지독하게 개인주의여서 점심을 모두 따로 먹기도 했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점심때 간단히 김밥을 먹으면서 책도 읽을 수 있었다. 회식비가 나왔는데 1/n로 나눠서 각자 외식하고 영수증을 청구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마저도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연말 파티 때 밍글링을 하면 놀랍게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초대해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새로웠다.
무엇이 더 좋고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재미있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를 넘는 사생활 공개는 나도 싫지만 우리 집 고양이 사진을 회의 때 돌려볼 수 있다는 것은 아직도 신기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