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단점을 드러내는 용기
깜빡이도 켜지 않고 차선 변경을 하는 차주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야 말았다. 참을성이 없는 30대의 마지막을 여름 보내면서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나 잘난 줄 알고 무서울 게 없었던 젊을 때 (지금도 젊다!)를 생각하면 시간이 갈수록 나의 단점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슬프다.
어릴 때 러닝셔츠만 입고 밖을 나가는 아빠가 부끄러웠다. 물론 집 앞 골목까지가 행동반경이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아서 아빠한테 잔소리를 했다. 옷 좀 입고 다녀요 아빠. 그런데 요즘의 나를 생각하니 아빠처럼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 성격을 남들 앞에 표출하는 행동이 잦아진 것 같다. 살아보니 단점을 감추고 사는 것만큼 피곤한 게 없어서 난 이런 사람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잘 맞춰주세요 하는 꼴이다.
면접 때 지원자들에게 하는 단골 질문이 '장점'과 '단점'에 대한 것이다. 아마 지원자 대부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는 것이 회사에서 받아들여질 정도의 수위인가를 고민하고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어필하거나, 사소한 단점을 예시로 들어 어떻게든 감추려고 할 것이다. 사실 자신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고민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면접 때 전 게으름이 단점입니다! 전 거짓말을 잘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단점은 보통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 역시 정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고 20대를 보냈고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기 시작한 것도 서른이 넘어서 부터이다.
나의 단점은 업무에서 어떻게 용기 있게 사용되는가?
우선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일을 할 때 어떤 타입이 되는지를 알고 있다 보니 미리 동료들에게 나의 기대치를 설명하고 발생할 수 있는 내용을 미리 공유한다.
"전 디테일에 약합니다. 숫자나 오탈자 오류에 대해서는 00 씨가 리뷰 부탁드려요. 마감시기가 다가오면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제 스스로가 예민한 거지 여러분들께 화난 게 아니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혹여나 제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으면 긴장 풀라고 해주세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란 말을 많이 한다. 인생의 엄청한 파도를 겪지 않는 한 내가 가진 신념이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은 고칠 수 있다.
할 말은 다 하고 살자 (신념)-> 다른 차주에게 소리 지른다 (행동) 일 때 나의 신념은 변함없지만 행동은 컨트롤이 가능한 것이다. 할 말은 다 하고 살자 (신념) ->하지만 소리는 지르지 않는다 (행동) -> 브런치에다가 글을 쓰자 (차선책)
단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기분 나쁜 이유는 상대방이 나의 신념을 바꾸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면 안 되지, 상대방이 몰랐을 수도 있잖아."라고 했을 때 '지금 이 사람이 내 신념을 바꾸려고 하는 거야? 어디 감히!'라고 생각하면 "네가 뭔데"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대신 나의 행동에만 집중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며 쉽게 이해가 된다.
다시 면접 이야기로 돌아가서 만약 자신의 단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자칫 잘못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나의 신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 정직함이 신념이라면 이것이 간혹 '행동'으로 드러날 때 어떤 단점과 장점을 가졌는지 양면성을 어필해 보는 것이다. 단점을 드러낼 용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