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보이는 그대로 믿으세요
나를 너무 믿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오래전 이야기이다. 누가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닌 디자인의 지갑을 선물해준 남자와 헤어지기로 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번의 경고신호가 있었는데 무시해 오다가 결국 터진 것이다.
이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의 여자가 있는 듯했는데 내가 그 여자라고 착각해왔다. 분명 내가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신다고 했는데 술잔을 내 앞에서 치우며 자기 술 못 마시잖아 한다던가 내가 한적도 없는 말을 했다고 기억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바닐라라테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다) 사 왔어, 이런 식이다.
결국 그 지갑은 쌓여왔던 내 화에 불을 지르게 되었는데 아마 이 남자는 지금도 까다로운 여자 친구가 지갑을 마음에 안 들어해서 화가 났고 헤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확증편향 (발췌: 한경 경제용어사전 /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인데,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없다.)은 쉽게 말해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10가지 요소중 나에게서 한 가지를 발견했을 때 다른 9가지 요소 역시 내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 버리고 다른 점을 믿지 않는 것이다. 만약 또 다른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면 역시 내가 맞았어 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런 실수를 면접 때 많이 발견한다.
인터뷰에 참석한 사람은 일반 사무직을 하다가 그만두고 매장일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똑똑한 친구란 생각이 들었으나 같이 인터뷰에 참석했던 매니저는 면접 이후에 이 사람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요?
너무 똑똑해서 제 말을 잘 들을지 모르겠네요. 말투가 저런 사람들은 고집이 세더라고요
스탈린은 현명한 사람은 보는 것을 믿고 겁쟁이는 믿는 것을 본다고 했다. 결국 이 매니저는 그간에 자신이 봐왔던 사람들을 카테고리에 넣어 분류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난 면접에서 '직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간혹 이것이 직감인지 아니면 내 속에 감춰진 무의식적인 편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가 사람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인공지능의 경우도 그간의 데이터의 취합을 바탕으로 확률적인 매치를 찾아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각기 다른 존재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99.9% 만족시키는 사람을 만나도 그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다름이 개성을 만들고 같은 사람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도록, 나의 믿음을 너무 과신하지 않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