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지원을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을 구하지 마세요, 일단 질러 보는 겁니다
채용박람회에서 만난 지원자가 쭈뼛쭈뼛 다가와 얼마 전 올라갔던 우리 회사 채용공고를 프린트한 종이를 보여주었다.
"여기.. 관련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는데요"
내가 올린 공고는 아니지만 (난 보통 연차를 공고에 기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적혀 있긴 했다.
"제가 경력이 2년 8개월이거든요, 지원해도 될까요?"
이 질문을 들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회사에서 합격여부가 아닌 지원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 지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인데 왜 이런 허락을 구하는 것인지, 무엇이 지원자들을 이렇게 수동적으로 만들었는지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내가 무슨 권리로 2년 11개월 경력과 3년 경력만을 두고 서류 합불합을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지원하세요, 물론이죠."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에게 이 내용을 물어보았다. 그녀도 얼마 전까지 취업준비생이었으니 왜 이런 질문들이 지원자에게서 나오는지 알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안될 거면 이력서 쓰는 시간도 아깝고요, 또 잘 못썼다가 혹시 블랙리스트 같은 거에 올라가서 나중에라도 지원 못하게 될까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여하튼 인사담당자 기분 상하게 하면 안 되잖아요, 분명 3년 경력자만 지원하라고 했으면 말을 들어야죠."
이해가 되었지만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어차피 안된다는 생각은 결국 연차만을 보고 서류가 걸러진다는 것인가? 직원수 5인 미만 회사의 인사팀 경력 3년과 훨씬 큰 회사의 인사팀 경력 2년은 후자가 훨씬 가치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제약이 지원자들이 이력서를 지원하는 것부터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도 이력서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네, 지원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어차피 떨어질 거 쓰는 것이라는 판단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회사에서도 늘 불확실성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처럼 팔릴지 모르지만 일단 물건을 앞으로 빼서 진열하는 모험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며 사과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인사담당자가 외부에서 봤을 때는 어마 무시한 힘을 가진 것 같지만 우린 그냥 중간다리 역할을 할 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지원자들이 저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아직도 타 기업 채용공고를 보면 전화 문의 절대사절, 이력서는 PDF 파일로 2장 이상 넘기지 말 것. 등의 '나는 바쁜 인사담당자니 어쭙잖은 이력서는 들이밀지 마시오'의 느낌이 팍팍 드는 다소 강한 말투의 제약사항들이 많이 있는데 지원자들 입장에서는 무섭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커질 수밖에.
우리 회사는 내부 채용을 많이 하는데 직원들 역시 지원해도 되냐는 질문을 하러 인사팀을 자주 방문한다. 그럴 때마다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라고 이야기하는데 면접을 보게 되면 이번에 합격하지 못해도 해당부서 매니저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그 부서 업무도 물어볼 수 있고 커피 한잔 하면서 나의 관심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불합격의 피드백은 다음 기회에 다시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혹여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외부 지원자들에게도 똑같이 말해주고 싶다. 입사지원도 많이 해보고 불합격하면 피드백도 받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쓸수록 잘 다듬어진다. 그 회사 채용시스템이 엉망이라면 회사 시스템도 엉망일 테니 시스템을 한번 이용해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첫 차를 샀을 때 너무 아까워서 (무서워서) 차를 가지고 나가지 못했는데 모르는 길은 시도도 못한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어느 순간 한번 해 볼까, 하고 덜덜 떨리는 한 시간을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데 와이퍼 켜는 방법을 몰라 경찰서를 방문한 것은 비밀이다..)
운전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디든 차를 끌고 나가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난 초보니까 운전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일단 몰고 나가야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멋지게 드라이브를 갈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지원을 망설이고 있었다면 주저 말고 클릭 버튼을 누르길 바란다.
추가) 만약 경력 10년 차인 사람이 3년 차 공고에 지원했다면 나는 연봉을 3년 차에 맞출 의향이 있는 지원자로 인식한다. 보통 이런 경우는 전화로 물어본다. 이것이야말로 서로 시간낭비 안 하는 가장 심플한 방법인데 보통 열에 아홉은 입사지원을 포기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