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특혜 채용, 인간이 된 웅녀
누가 선택될지 답은 정해져 있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곰과 호랑이에게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을 버티라는 과제를 내어준 환웅은 답정남이었다. 고기 없이 못 견디는 육식동물인 호랑이가 아니라 잡식동물인 곰을 이미 사람으로 '내정'하고 있었으니까 호랑이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어찌 보면 채용에서의 '내정'(이미 결정된)이라는 게 우리 단군신화 때부터 시작된 오래된 역사일 수도 있다. 환웅은 곰을 웅녀로 만들기를 이미 내정하고 그에 맞는 과제를 내준 것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니 심각하지 말자)
승진이라는 것이 연차가 쌓여서 청약통장처럼 1순위, 2순위가 정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간관리자 이상의 직급은 보통 이런 내정자라는 것이 생긴다. 외국계 회사에서는 succession plan이라고 부르는데 어느 회사든지 이름은 다르지만 이런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성과평가가 끝나면 high performer (최상급 성과자) 들을 놓고 이들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를 체스판의 말처럼 오로지 회사의 힘으로 '내정'하는 행위는 비즈니스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회사는 그들이 필요하고 그에 적절한 계획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관리자 이상의 직급은 어느 정도의 '밑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프러포즈'에 많이 비유하는데 만약 생판 처음 보는 남자나 혹은 아직 나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 남자가 반지를 주며 결혼하자고 하면 거절하거나 망설인다. 성공적인 프러포즈를 위한 '밑 작업'은 사랑하는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그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프러포즈는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일종의 confirmation (확인)인 것이다. 누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할지 눈치를 채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내정자가 누구인지 대충 눈치를 챈다. 그리고 이러한 밑 작업을 '정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사내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회사에서 인재관리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정치가 없는 회사는 없다. 밑 작업 없는 프러포즈가 없듯이.
그런데 문제는 능력 없고 일 못하고 뜬금없는 내정자 때문에 생긴다. 능력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 내정이 된다면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을 하지만 저 사람 일도 안 하고 매일 이사님 수발 다 들더니 결국 자리 하나 꿰찼네가 되어 버리면 우리는 사내정치에 치를 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내정치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실력이 없으니 다음 승진도 정치질로 성공해야 하기에 그 밑 작업은 퇴사를 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를 한 상태이다. 사실 그 결정을 한 매니저를 신뢰할 수 없기에 그 결정도 믿지 못하는 것이지만 채용에 대한 공정성은 나 조차도 점수를 매길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채용이라는 것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포기가 좀 빠르지만 그럴 거면 채용담당자라는 포지션이 왜 존재하느냐라는 회의감까지 든다.
어쩌면 웅녀는 곰 시절에 환웅에게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너랑 결혼해 줄 게로 딜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호랑이는 그 뒤에 환웅에게 따졌을까? 만약 채용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도 감히 이사님께 따지지 못하듯이 호랑이도 그냥 결과를 받아들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