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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바 Sep 26. 2019

회사의 이별통보, 해고

당해보면 별거 아니더라

저 직원 당장 해고하세요.


직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고객이 컴플레인 마지막에 한말이다. 고객님, 직원 해고는 고객님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라고 응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침묵했다. 저희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해고가 징계의 종류 중에 가장 큰 결과이긴 하나 아직도 사람들은 회사에서 잘리는 행위를 무척 두려워한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든 직원을 벌주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 '해고'라는 단어를 쓰고 나 역시 채용 청탁이라도 들어오면 '나 잘려'라는 말로 응대해 상대방의 다음 말을 원천 봉쇄한다. 우리 모두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12년 전에 일했던 회사가 다운사이징되면서 지사의 인력을 감축하게 되었는데 팀장, 나, 그리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직급이 같았던 직원 중 내가 선택되어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 직원은 수습이 막 지난 상태라 아직 성과가 나지 않았는데도 내가 선택되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땐 내가 그녀보다 비쌌고, 난 지방대 출신이라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대표님 입장에서는 그녀가 더 잠재능력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해고를 당한 날, 생각보다 덤덤했고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해고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난 한 달 만에 서울에 다음 직장을 얻었다. 첫 회사의 해고가 나에게는 서울 진출의 기회가 되었고 이후 계속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마 그 회사가 날 해고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에 만족하며 살았을 수도 있다. 이후에 계약 종료도 겪어보고 부당한 인사발령도 겪으면서 해고라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란 생각이 점점 들었다.




연애를 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이별'이다. 나의 행동이, 우리의 오해가 쌓여서 이별이 되는 것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기에 조심하고 눈치를 보고 사과한다.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전전긍긍해지면서 피라미드 꼭대기의 사람은 점점 기고만장해지는 이상한 관계가 되기도 하는데 회사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회사와의 관계에서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게 되면 회사의 갑질이 더 크게 느껴지고 헤어짐(해고)이 두려워 부당함을 받아들인다.


적어도 회사의 이별통보는 법적인 고소가 가능하다. 내가 인사팀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머릿속으로 내가 해고당하면?이라는 시물레이션을 해 보았을 때 회사를 법적으로 엿 먹일 여러 방법을 떠올리면서 혼자 고소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해고 전에 내가 사표를 쓰는 일이 더 많아서 실지로 해본 적은 없다)


이별이 두려워도 연애의 순간에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웃으면서 떠날 수 있는 것처럼 회사생활을 하면서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어떤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지는 배웠다. 물론 당장 먹고살 일이 걱정이 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실패가 늘 다음 기회를 가져왔으니 쿨하게 받아들이고 나 싫다고 떠나는 인연에 매달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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