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머리가 있다, 일하는 센스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일을 찾아서 하거나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수를 보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 듯하다. 나도 센스 있는 직원이 되고 싶어서 선배님 눈치를 살피고 부장님의 헛기침 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고객을 만나는 일을 시작했을 때 고객의 말을 듣고 ‘센스’ 있게 해결하는 경우 칭찬을 받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했을 때 고객의 눈치를 살펴 쿠폰을 드리거나 적절한 보상을 해 드리면 만족하고 돌아갔다. 고객이 “쿠폰이라도 좀 줘봐요.”라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 센스 있는 직원의 조건이었다.
요즘 매장에서 고객을 만나면 나는 일부러 이러한 센스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으시면 저도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로 응대를 하면 사실 클레임이 해결되는 데까지 시간은 더 걸리지만 나도 고집스럽게 모르는 척 일관한다. 일부러 센스 없는 직원이 되길 자처하게 된 것은 나이가 들어 고집이 생기기도 했고 말하지 않는걸 눈치 있게 알아서 일하는 것이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눈치를 강요하는 사회
외국인 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외부 전문 강사를 초청해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 강의가 끝난 후 네덜란드에서 온 매니저가 나에게 “눈치”라는 한국어 단어를 말하며 재미있는 문화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다른 나라 언어로 풀이하기 어려운 단어이지만 어느 나라든 눈치의 행위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아도 여자 친구가 좋아했던 음악을 떠올려 프러포즈에 사용한다거나 부모님 사이가 냉랭하면 조용히 TV를 끈다.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는 분위기를 읽고 거기에 맞춰 행동해 왔는데 거기다가 “체면”이라는 문화가 더해지면 내가 기분 나쁜데 나쁘다고 이야기는 하기 싫고 다만 상대방이 내가 화났음을 “눈치”채 주길 바라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회사에서 체면과 눈치
요즘 직원들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자신의 성과를 상사에게 말하지 않고 알아서 이해해 주길 바라는 직원들이 많다. 동료들 사이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났던 이 직원은 당연히 자신이 다음번 승진 대상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냈던 성과를 자랑하는 것은 낯부끄러운 행동이라 여겼고 동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매니저도 알아봐 주길 기대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싫고 (체면) 알아서 인정해주길 (눈치) 바랬던 것인데, 결과는 그녀가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았고 그녀는 퇴사를 결심했다.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 시작이다
직원들의 고충을 듣다 보면 대부분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오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많다. 매니저와 동료와의 갈등은 그들의 행동, 눈빛이 나에게 이러한 방향으로 느껴졌기에 기분이 상한 것으로 시작이 되기도 한다. 즉 센스를 너무 발휘했던 것이다. 혹은 상대방의 기분 나쁜 말이 상처가 되었지만 앞으로 상대방이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냥 화가 난 감정만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라던가 난 이런 경우 이렇게 접근해 주면 좋을 것 같아. 등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인 듯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센스 있게 일하는 것”을 멈춘 지 오래되었다. 나도 내가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상대방도 그렇게 하길 바란다. 그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