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합시다
남들보다 잘하는 것보다 잘 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예전에 같이 일했던 덴마크인 매니저가 북유럽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예시를 들었다. “덴마크의 교육은 마치 갈대밭의 모든 갈대들의 키를 맞추는 것과 같다. 만약 내가 반 평균보다 너무 잘한다고 생각이 들면 일부러 몇 문제를 틀린 적도 있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가 모든 덴마크인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등수를 매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한 사람은 모두 Pass(통과), 그렇지 않으면 not pass 인 것이다. 1+1이 2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 다 합격이지만 한국에서처럼 1+1이 2라는 것을 아는 학생들을 다시 줄 세워서 누가 더 깊게 이해하고 있는지 구별해 내기 위해 문제를 더 어렵게 내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같은 일도 ‘더’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반복 작업이라면 누구보다 더 빨리, 문서도 더 가독성 있게. 내가 그러하니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도 ‘더’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을 하고 ‘덜’ 하는 사람에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닌데도) 질책을 했다. 내가 저 매니저에게 들었던 피드백은
“A, B를 말하고 그다음엔 C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꾸바는 벌써 F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어. 다른 사람이랑 속도를 맞추는 것도 필요해. 꾸바는 똑똑하니까.”
였다. 사실 내가 똑똑하다는 것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나만 잘하는 것이 크게 칭찬받는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둘러서 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음, 내가 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긴 하지.”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이후에 한 직원과 면담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직원은 자신의 매니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인사팀을 찾았다. 2시간이 넘는 대화 속의 사적인 이야기를 다 걸러내면 요지는 ‘내 매니저는 나보다 일에 대해 잘 모른다.’였다. 매니저면 나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쩌면 나보다 더 많이 모를 수 있죠? 일을 더 잘하니까 매니저 아닌가요? 본인이 일을 더 못하면서 왜 나보고 더 잘하라고 감히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거죠?
불평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이 어떻게 비치는지 알 수 있었다. “00 씨, 영화감독이 영화배우보다 연기를 더 잘할까요? 만약 영화배우에 대한 연기를 감독이 지시할 때 배우가 감독님은 나보다 연기도 못하면서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일을 안 하는 직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속도와 능력에 따라 결과물은 다르겠지만 어떤 결과가 이상적인 결과인가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직접 그 이상적인 결과를 내거나, 혹은 그 이상적인 결과를 낼만한 사람을 찾아서 시키면 된다. 우리가 매니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후자에 해당될 뿐, 업무지식이 더 깊어 지고 능숙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적당히 일을 하면서 다른 직원을 기다려 주기 시작하자 다른 직원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새롭고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마무리를 하고 손 털고 으샤- 하면서 느꼈던 성취보다 더 큰 성취감이었다. 다른 직원들의 결과물은 지금껏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각을 깨워줬으며 그들에게도 개인의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얼마 전 입사한 우리 부서의 직원이 일이 너무 바쁜데 꾸바 씨는 항상 여유롭네요.라고 말했다. 업무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여유로운 생활이 되긴 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히 일하는 것을 이제야 배우다니, 나의 마지막 30대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앞자리가 ‘4’로 바뀐다면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