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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n 01. 2023

너의 당당함이 사랑스럽다

세상을 예쁘게 담아 보려는 너의 뒷모습을 내 마음에 담아본다



  혼자 오는 제주는 처음이었습니다. 창을 열고 해안도로를 달리면 차 안 가득한 바다 내음이 제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합니다. 제주의 바다는 더 푸르고 예쁜 색이란 관념에 휩싸인 채로 물보라마저 특별해 보입니다. 목적지 없이 달립니다. 해안도로 어딘가 맘에 드는 곳에 멈춰 하염없이 눈에 닿은 모든 순간을 차곡차곡 마음에 눌러 담아냅니다. 재촉하는 이도 어딜 갈 건지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데서 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죠.


  호텔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캔맥주 하나를 마셔봅니다.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완전한 자유를 만끽한 하루를 기념합니다. 그때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왔습니다. 천천히 집어 든 휴대전화엔 딸이 보낸 메시지가 잠금화면에 보입니다.

  ‘아빠! 내일 3시 30분 비행기로 제주 간다!’

  혼자 온 3박 4일간의 여행을 격하게 던져버리는 딸의 당당함에 헛웃음이 났습니다.


  하루 반나절로 끝난 혼자만의 제주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좋았던 순간들 가운데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딸과 신창 해안도로에 있는 풍차를 보러 갔습니다. 이동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저의 허전함은 온데간데없네요. 밤새 값싼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이랬다는 둥 저랬다는 둥 하는 딸의 조잘거림은 풍차 앞에 도착해서야 멈춥니다. 마침 해가 바다 너머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찰나였죠. 풍차 뒤로 보이는 하늘빛은 그저 아름다웠습니다. 그 장면을 예쁘게 담고 있는 딸의 뒷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이는 제주의 노을과 딸의 뒷모습은 그림이었습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작입니다.


  딸과 처음 만나 반가움의 입맞춤을 한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성향인 딸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즐거운지 화가 나 있는지 보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스스로 알아보고 준비하고 해결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특별한 도움을 준 적도 없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내준 정도가 전부죠. 아마 힘든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혼자 이겨낼 겁니다. 그래도 가끔은 얘기 해 주길 기다려 봅니다. 뭐라도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네요.


  딸! 너의 삶이 항상 행복에 겨웠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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