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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May 21. 2023

난 반대로 살겠다

오늘이 낯선 지구 여행자입니다만 ep3

  딸아이와 세 식구일 때는 힘든 것이 없었다. 아니 행복했다. 아이가 둘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큰 착각이었다. 퇴근 후에 육아를 도와주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내와 난 각자 한 명씩 담당을 정했다. 첫째인 딸은 온전히 내 담당이 되었다. 둘째인 아들은 모유 수유를 해야 했기에 아내가 담당했다. 딸이 배고프다고 보채면 난 물을 끓여 젖병을 소독하고 분유를 정확한 용량으로 타서 잘 흔들어 섞은 다음 내 아랫입술로 적당한 온도인지 체크하고 입에 신속하게 물려줘야 한다. 자다가도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기저귀도 수시로 봐줘야 한다. 옷도 하루에 몇 번씩 갈아입힌다. 빨래며 설거지가 순식간에 쌓인다. 전쟁터다. 힘들 시간도 없다.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한동안 그랬었다. 난 조금씩 지쳐갔다. 생계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결국 말도 못 하는 아들에게 내 안의 응어리를 쏟아내고 말았다. 다 그만두고 쉬고 싶었다. 저절로 깰 때까지 자고 싶었다. 잔뜩 화가 난 채로 골목을 걸었다. 어둑해진 동네는 한적했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뺨을 지나 귓가에 맺혔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났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늘 혼나던 나. 한번은 구둣주걱으로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순간 난 울며불며 엄마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만화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엄마가 아이를 혼내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장면. 상상했다. 나를 안고 우는 엄마의 모습을. 현실은 가혹했다. 두 배로 맞은 듯하다.

 

  며칠 동안 생각이 많았다. 나를 꼭 닮은 아들. 얼마나 열심히 세상을 배워 가는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미안했다. 어릴 적 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내 부모와는 반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자주 나에게 얘기했다. 나와 똑같은 자식 낳아 속상해 보라고. 난 그렇지 않을 거라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난 첫 실패를 맛봤다. 문득 내가 부모님을 닮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싫었다. 너무 싫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란 감정을 온전히 내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함께 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난 아버지-아빠라고 써봤지만 어색해서 아버지로 수정한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부터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셨다. 엄마는 어머니란 호칭을 거부했다-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살아오며 나눈 대화를 글로 옮기면 A4 한 장을 못 채운다. 대화라고 할 수도 없다. 지시나 훈계였다. 공감대가 없다. 사업으로 늘 바쁘신 데다가 밤늦게라도 혼자 집에 오는 법이 없었다. 술 한 병을 옆에 두고 친구와 밤새 바둑을 두었다. 엄마가 화가 많은 이유가 있었다. 난 화풀이 대상이었던 거다. 분했던 것은 동생은 어리다고 때린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애착 관계가 형성될 나이에 엄마와 지낸 시간이 없었다. 고모를 엄마라 하고 어쩌다가 보는 엄마를 아줌마라 불렀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대문 밖에 벌거벗긴 채로 서 있으려니 추운 것보다 창피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아저씨 한 분이 핀잔을 줬다. 나는 파란색 철 대문과 콘크리트 기둥이 만나는 구석으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해는 저물어 어두웠지만 멀리서 봐도 뽀얀 속살이 보였으리라. 저녁 밥상이 차려져 있었지만, 난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느라 정신이 팔렸었다. 골목 언덕엔 교회가 있었다. 기역으로 꺾인 넓은 계단과 가운데가 좁고 높게 솟아 있는 건물이었다. 그 꼭대기에 십자가. 조금 전 하얀색이던 십자가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교회는 숨을 곳이 많았다. 건물 옆 좁은 통로를 돌아 뒤편으로 가면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들이 마치 복잡한 미로 같다. 벌거벗은 지금 나의 마음처럼 복잡하다. 언제쯤 끝날까.


  중2 여름방학이었다. 막내 고모 집에서 몇 주를 보냈다. 방학이 되면 고모네, 외삼촌, 외숙모네를 번갈아 다니며 보냈다. 다행이었다. 집을 떠나서 있는 건 나에게 행복이었다. 혼나지 않아도 되고 용돈도 두둑이 생겼다. 그해 봄에 이문세 4집이 발매되었다. 난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온종일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 음반에 있던 노래들은 반주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다. 점심을 먹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방에 누워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놓고 ‘깊은 밤을 날아서’를 듣고 있었다. 고모의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잽싸게 일어나 신발을 챙겨 신고 차에 올라탔다. 읍내의 한 고깃집이었다. 난 한순간 몸이 굳었다. 2년만인가. 사업이 부도가 난 후 삼촌에게 수습을 맡기고는 사라졌던 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고모와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얘기했다. 내가 들으면 곤란한가 보다. 오랜만에 본 아들을 흘깃 보는 게 다였다. 그게 끝이었다.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난 아버지, 엄마와는 반대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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