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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May 29. 2023

혹시 모자라지 않나요?

 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3



‘엄마는 자주 나에게 얘기했다. 나와 똑같은 자식 낳아 속상해 보라고. 난 그렇지 않을 거라 말했다. 물론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난 첫 실패를 맛봤다. 문득 내가 부모님을 닮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싫었다. 너무 싫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 난 반대로 살겠다 中



  부모가 되어 보면 안다던 그 마음. 저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그 마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요? 늘 저 때문에 속상하고 화가 나 있던 걸까요? 자라며 혼났던 기억이 대부분인 저는 항상 눈치를 봤습니다. 들키지 않고 몰래 사고 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사고가 뭐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공부할 시간에 친구들과 좀 더 노는 게 사고였죠. 엄마는 ‘공부 잘하는 누구의 엄마’ 소리가 꽤 만족스러우셨나 봐요. 당신의 노력으로 제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되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물론 엄마의 열성 덕분에 책벌레가 되긴 했습니다. 수많은 백과사전과 위인전이 책장에 빼곡했습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도 혹시 모자라지 않나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 문구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화장실에 걸려 있던 글귀죠. 전 이 짧은 글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이런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였습니다. 아빠의 욕심이 조금씩 돋아나던 때였죠. 이랬으면 좋겠는데 저랬으면 좋겠는데 하며 아이들이 투정이라도 부릴라치면 무서운 표정도 지어보곤 했죠. 하지만 저 글은 그런 저를 한없이 창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라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그것. 아버지, 엄마와는 반대로 살겠다던 그 다짐을 어느샌가 잊고 있던 겁니다.

 

  아이들을 대할 때 자식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내가 싫은 건 아이들에게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능한 한 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준다던 자전거를 끝내 사주지 않던 엄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 사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켰습니다. 아이들이 사춘기일 땐 또래들이 쓰는 은어를 검색해 외웠다가 써먹고는 했죠. 부모보다 인생의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봐요. 엄마에게 애들 같다는 핀잔을 듣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제가 ‘잘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아이들 역시 아빠가 노력하는 걸 압니다. 표정에 드러나고 말투에 그 마음이 담겨있죠. 물론 서운한 것도 많을 거예요.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으니까요. 이제는 둘 다 20대 중반에 접어든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대견합니다. 한편으론 세상과 각자의 싸움을 해 나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죠. 가끔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의 간도 걱정됩니다.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고요. 대학 졸업 기념으로 자동차 한 대 선물하는 멋진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마음은 그렇습니다. 정작 부모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이해되지 않네요.


  “꼭 말을 해야 아니?”

  네 말을 해야 알죠. 말을 하지 않으면 오해하기 마련입니다. 엄마도 저를 사랑하셔서 그런 겁니다. 저도 압니다.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을 뿐이죠. 엄마가 보고 배운 부모의 모습이 그랬던 겁니다. 부모에게 순종을 빙자한 복종을 하는 아이가 최고의 효도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님 세대까진 그랬습니다. 전 소위 ‘베이비붐 세대’라 불리던 때에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X세대’라 불리기도 합니다. 무슨 무슨 세대의 원조 격이죠.


  학교에 가면 한 반에 70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한 학년에 20개 반이 있었고요.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도 있었습니다. 정말 콩나물시루 같았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과 부딪히고 어울리며 자란 그때는 독창성과 다양성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선생님입니다. 저의 부모님 세대죠. 강압과 통제에 익숙합니다. 그래야 내 아이가 잘되고 바르게 큰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란 말이 공감은 되지 않지만, 이해는 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웠다’고 하잖아요. 제가 막상 경험해 보니 ‘아이가 자랐다’가 맞는 말 같아요. 물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 부모가 되기로 ‘선택’했으니 아이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누가 강요한 건 아니니까요. 날 위해 아이를 낳은 것이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죠. 아낌없이 주고 모자라지 않았는지 걱정하고 돌아보는 부모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제 마음에만 있으면 소용없어요. 말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서로 오해하지 않으려면 말이죠.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말썽을 부립니다. 커도 말이죠. 오늘은 아들이 집에 들어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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