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의 덧붙임 혹은 변명 2
“난 할아버지와 있으면 매우 안전함을 느꼈다. 엄마의 잔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신의 영역. 성스럽고 영광된 시간. 한겨울 새하얀 광목천을 새로 입힌 두툼한 솜이불을 턱밑까지 올려 덮고 있으면 전해져 오는 묵직함.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보고자 버텨도 이내 스르륵 잠들 수밖에 없는 포근함과 안정감. 나에게 할아버지는 그랬다. 그런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나의 영원할 줄 알았던 울타리가 쓰러졌다.”
- 버티면 어른이 된다 中
사랑이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시는 할아버지가 너무 좋았죠. 모두 무서워하는 존재였지만 전 아니었습니다. 버릇없이 굴어도 “허허” 웃으시던 그 웃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저에게만큼은 한없이 인자하고 너그러우셨죠. 늘 저와 함께 할 것 같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인가부터 누워만 계신 겁니다. 발음도 부정확하고 혼자서는 일어나시지도 못하셨죠. 학교에 다녀오면 할아버지를 일으켜 드리고 방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이 저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친척들이 온 집에 모였습니다. 저녁을 먹은 지 한 시간 남짓 지났는데 갑자기 정전이 된 겁니다. 다들 양초에 불을 붙이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웠어요. 물론 어린 저는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자야 했지만요. 뭔가 분주한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아침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 인사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할아버진 보이지 않고 병풍이 커다랗게 쳐져 있었습니다. 전 호기심에 병풍 뒤로 갔고 거기에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보았어요.
“할아버지!”
반가움에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으셨죠.
“거기 가면 안 돼!”
엄마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저는 거실로 나와 어른들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너무 서럽게 우는 고모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구나. 전 그날 처음으로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의 강력한 울타리가 없어진 사실도 알게 됐죠. 눈물이 나진 않았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어요. 슬픔보다는 두려움이 컸던 모양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난밤 정전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고모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저의 두 번째 ‘죽음’은 아버지였습니다. 평생 당신의 속마음을 내어주지 않고 살아오셨죠. 아들에게 ‘사랑한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말하지 않아도 아들인 제가 알아주길 바라셨겠죠. 그 세대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어쩌겠어요. 대신 제가 받지 못한 다정한 사랑의 말들을 저의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표현해 봅니다. 낯 간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가 느꼈던 결핍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아이들과 이별하겠죠. 그때 ‘이런 걸 해볼걸, 저렇게 해볼걸’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죠.
비 오는 거실 창밖을 바라봅니다. 봄비가 노란 장미꽃잎과 상큼하게 입맞춤하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멀리 뒷산의 연두색과 초록색의 조화도 마음에 평온함을 줍니다. 비가 그치면 밤꽃향이 바람에 실려 집 안을 산책하겠죠. 눈을 감고 할아버지를 생각해 봅니다. 대문에 들어서는 손주를 보시고 버선발로 마당까지 마중 나오시던 할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느껴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는 큰아들에게 명심보감과 손자병법을 종이에 써가며 이야기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아들은 잘 헤쳐 나가길 바라셨겠죠.
우리 마음속 예쁜 말들을 꺼내봐요.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해봐요.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