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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길을 잃다

prologue 3

by 나홀로길에

악명 높은 파리의 지하철은 올림픽 준비기간이라 그런지 매우 깨끗했다. 건설된 지 백 년이 지난 파리의 지하철은 뭐랄까 좁고 긴 통로에 낮은 천장, 흡사 뱀굴 같았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사람들의 충고대로 가방을 앞으로 단단히 매고 손으로 감싸안은 채 지하철을 탔다. 서울의 지하철과는 다르게 꽤 급하게 좌우로 움직였다. 정차할 때도 부드럽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오래된 몇 개의 노선은 현재도 에어컨이 없었다. 호텔에서 출발한 지 40분쯤 지나 도착한 오페라 가르니에. 올림픽으로 인해 청소 작업을 한다며 대형 광고판으로 가려놔서 겉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한눈에 들어오는 로얄팰리스. 웅장한 건물과 쭉 뻗은 길. 나폴레옹이 궁전에서 오페라를 보기 위해 가던 길을 직선으로 정비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파리의 유명한 곳을 대부분 둘러볼 수 있는 워킹투어를 신청했다. 오페라 가르니에를 출발해서 튈르리 정원, 루브르 박물관, 시테섬, 노트르담 대성당, 생트샤펠 성당, 퐁뇌프 다리, 몽마르트르 언덕, 사크레쾨르 대성당, 테르트르 광장,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에펠탑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25,000보를 걸었다. 난 이미 순례길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었다. 처음 와본 유럽. 그리고 프랑스 파리는 TV에서 보던 대로 환상적이었다. 가는 곳마다 눈을 뗄 수 없이 아름다웠고 이곳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혼자 만들어 본 뵈프 부르기뇽을 점심으로 먹었다. 검색해서 찾아간 그곳에서 난, 내가 만든 것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게 됐다. 함께 마신 부르고뉴 와인 역시 일품이었다.


가장 기대했던 에펠탑은 큰 감흥이 없었다. 각종 매체에서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익숙했다. 늘 보던 걸 본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름 이렇게 저렇게 구도를 잡아가며 사진도 찍고 멍하니 앉아 눈에 담아보았다. 에펠 역에서 호텔까지는 RER C 노선이 한 번에 갔다. 한국의 GTX 같은 광역철도 망이다. 몇 분 기다려 탄 기차 안에서 센 강 주변의 풍경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내릴 역이 다가와 문 앞에 가서 서 있는데 어! 그냥 지나쳤다. 잘못된 걸 직감하고 한 프랑스 어르신에게 번역기를 통해 도움을 청했다. 아뿔싸, 기차가 이름이 있을 줄이야. 시간마다 오는 기차의 이름이 달랐고 정차하는 역이 달랐다. 저 멀리 창밖으로 내가 머무는 호텔이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차는 한참을 더 달렸다. 다행히 프랑스 사람들은 길을 잃은 나를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십여 분을 더 걸어 비로소 호텔에 도착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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