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슬아슬 파리

prologue 4

by 나홀로길에

비행기에서 만나 호텔까지 데려다준 셀세비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긴 여정에 힘이 되라고 저녁을 사준다는 것이다. 정말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한국 여행 막바지에 발목인대를 다쳤다는 그녀는 아직 다리가 불편한지 조금 절룩거리며 식당에 들어왔다. 우리는 비행기에서처럼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번역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말을 이해하는 데 물리적으로 조금은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의 조용한 대화는 꽤 자연스러웠고 즐거웠다. 말보다 마음이 통했다. 모로코계 프랑스인인 셀세비는 나이가 스물셋이었다. 아빠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며 사진 속 나와 내 딸의 다정한 모습을 부러워했다. 그러더니 나를 한국 아빠라 불렀다. 난 갑자기 프랑스 막내딸이 생겼다.


드디어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으로 가는 날이다. TGV를 타기 위해 몽파르나스 역으로 가야 했다. 대략 한 시간쯤 걸렸다. 나는 여유 있게 두 시간 전에 호텔에서 출발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 된다. 한국의 대중교통과 매우 비슷해서 어렵지 않았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오지 않았다. 조그마한 액정화면에 뭐라고 쓰여있었다. 사진을 찍어 번역을 해보니 응? 버스가 파업으로 운행이 중지됐다.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18분을 더 기다려 다른 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내가 가려던 지하철역이 아닌 다른 노선의 역으로 갔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괜찮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구글맵을 켜놓고 가는데 좌회전해야 하는 곳에서 우회전하더니 버스를 세운다. 사람들이 다 내린다. 뭐지?


한 프랑스인이 나에게 뭐라고 설명했다. 난 급히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버스 기사가 파업에 동참하러 가기 때문에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미친 건가? 말이 돼?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데 아무도 항의조차 하지 않고 순순히 내렸다. 갑자기 엊그제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프랑스에 한 사람이 오면 예술을 하고, 두 사람이 오면 사랑을 하고, 세 사람이 오면 시위를 한다.” 난 이 상황이 너무 황당했지만 어쩌겠는가 여긴 프랑스다. 한참 동안 기다려 다른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승차권 발매기가 말썽이었다. 역무원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이제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때 나타난 역무원에게 다급히 승차권을 사고 승강장으로 뛰었다. 지금 들어오는 지하철을 무조건 타야 했다.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니 9시 55분이었다. 나는 10시 05분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다. 네 시간을 타고 가야 하므로 음식과 물도 준비해야 했다. 입구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 뛰어 들어가며 가장 가까이 있는 빵 하나와 물을 집어 들었다. 아차 현금도 인출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일단 기차부터 타기 위해 서둘러 승강장으로 갔다. 기차가 보르도 지방을 지나면서 둘로 나눠지기 때문에 반드시 내 번호의 객차에 타야 했다. 기차에 오르니 10시 03분이었다. 배낭을 짐칸에 넣어두고 내 좌석에 앉으니 조금씩 움직이는 기차.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것도 잠시, 진정을 하고 주위를 보니 개구쟁이 어린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좌석이었다. 자기는 글렀네. 순례길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녹초가 됐다.



tempImageUz1Vlk.hei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리에서 길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