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갑다 파리

prologue 2

by 나홀로길에

긴 비행시간 동안 볼 영화를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영어 수준이 바닥이다. 프랑스어는 영화에서 들어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번역기라는 좋은 기술이 있지 않은가. 부족하지만 꽤 오랜 시간 번역기를 통해 대화했다. 그 친구들이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는 길이라 더욱 수월했다. 이름이 셀세비인 친구가 내가 예약한 호텔과 가까운 곳에 산다며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난 이미 행복했다. 돈 굳었네. 샤를 드골 공항에서 호텔에 가려면 한참을 걸어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가야 했다. 고마웠지만 호의를 넙죽 받아도 되는지 궁금했다. 그냥 인사치레로 물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로 치면 부천쯤 되는 지역에 호텔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용하고 한적했다. 더구나 재개발된 곳이라 깨끗했다. 하지만 걸어서 5분만 가면 파리의 힙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술집과 식당들의 모습이 흡사 홍대나 연남동의 골목 안 느낌이 났다. 다른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뿐. 주위를 둘러봐도 아시아인은 나 하나다. 배가 고파 가게들을 기웃거려 보았다. 현란하게 쓰인 메뉴판엔 뜻 모를 글자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번역을 시도해 보지만 엉뚱한 해석으로 더 혼란해졌다. 마침, 벽에 음식 사진 하나가 걸려있었다. 난 손가락으로 당당히 가리켰다. 주문한 지 불과 5분 만에 음식이 나왔다. 꽤 먹음직스럽게 생긴 버거였다.


밤 9시가 훌쩍 넘었다. 호텔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한여름엔 10시가 넘어도 밝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순례길의 시작점인 생장으로 가는 고속열차의 예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첫날 머물 알베르게에서 온 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예약확정서를 점검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블로그들을 다시 찾아보며 이동 시 주의 사항이나 여러 가지 팁들을 저장해 두었다. 처음 며칠간의 숙소를 예약해 두면 맘이 편하다는 말에 대략적인 거리를 확인하고 예약도 했다. 첫날 피레네를 넘어 쉬게 될 론세스바예스와 그다음 갈 곳인 수비리. 그런데 수비리에 숙소가 모두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할 수 없이 5km를 더 가서 나오는 라라소나의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이것이 나를 한동안 괴롭게 할 일이 될 것을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다.



tempImagefx2mZ5.hei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갑자기 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