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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Aug 13. 2024

집으로 돌아갑니다

벨로라도 - 오르테가 23.9km

어제 오후부터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더니 아침엔 7도가 됐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게 느껴졌다. 어제 느지막이 도착했던 독일 아주머니와 함께 조식을 먹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런데 반대 방향으로 가기에 그 길이 아니라고 말하며 불렀다. 하지만 그 방향이 맞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냐고 나는 재차 물었고, 그녀는 집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이 독일이라고 했는데?



그녀는 독일의 자기 집에서 걸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갔다가, 걸어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게 가능한가? 난 어리둥절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뒤돌아 언덕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로 출발했다는 사람을 만났을 때보다 더 놀라웠다. 세상은 넓고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벨로라도의 입구에 있던 알베르게에 머문 탓에 아침이 되어서야 마을을 구경하게 됐다. 곳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이 화려하게 골목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벽화마을 같다. 바닥에, 할리우드에서 볼 수 있는 손도장 같은 것도 있고, 꽤 볼거리가 많은 마을이었다. 길의 시작은 평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급경사의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날씨는 더 추워지고 바람도 거세지고 흙먼지로 온몸이 뒤덮였다.



왓츠앱으로 예약한 알베르게에서 연락이 왔다. 오후 3시까지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침대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친절한 협박 문자에 마음이 급해졌다. 추운 날씨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더니 무릎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잘 견뎌주었는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조심 또 조심하며 부지런히 걸어 3시 5분 전에 알베르게에 무사히 도착했다. 덩치가 크고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호스트가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이층 침대 5개가 전부인 작고 아담한 알베르게였다. 마지막에 도착한 난 오늘도 이층이었다. 아래층엔 75세인 한국인 할머니께서 계셨다. 순례길에 혼자 오신 것이다.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세계 곳곳을 혼자 여행하신 경험이 풍부하셨다. 조그마한 수첩엔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 놓으셨다. 스마트폰도 꽤 능숙하게 사용하셨다. 뭔가 당당하고 힘이 느껴졌다. 이후로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의 건강과 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웠기를 염원해 본다.



PS. 버스로 편하게 데려다주고, 식사와 잠자리가 제공되는 관광이나 할 법한 연세의 어르신이 배낭을 직접 메고 여행하는 모습은 나의 기억 속에 꽤 인상 깊게 남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을 즐기시는 모습이 인생의 전문가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 무언가를 도전할 때 나이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런 생각이 쓸데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Tip. 한여름이 아니라면 경량 패딩은 준비하자. 평균 해발이 660m인 스페인은 일교차가 큰 데다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상기온 발생이 잦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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