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테가 - 오르바네하 리오피코 14.6km
아침 7시에 알베르게 1층에 있는 Bar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다던 덩치 큰 호스트는 8시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다음 마을인 아제스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뺨에 스치니 날카로운 한기가 느껴진다. 한 시간쯤 걸어 도착한 아제스에서 또르띠아와 카페 콘레체를 주문했다. 스페인 또르띠아는 영어권 사람들이 오믈렛이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이곳의 또르띠아는 계란에 감자와 양파를 다져 넣어 피자처럼 두툼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는 맛이다. 카페 콘레체는 우유를 넣은 커피다.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졌다. 결국 배낭 깊숙이 넣어두었던 패딩 조끼를 꺼내 입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제스에서 다시 만난 이탈리아 부부는 추위에 떨며, Bar 안의 온기에 더 머물다 가겠다며 먼저 가라고 인사했다. 아제스를 벗어나니 조금씩 고도가 높아졌다. 문제는 고도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돌밭 길이었다. 작고 큰 뾰족한 돌들이 발을 괴롭게 했다. 그나마 덜 아프게 생긴 돌을 찾아 밟아갔다. 그런데 걷다 보니 돌들을 이리저리 피하는 것보다 큰 돌을 밟고 가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무릎에 다시 통증이 왔다. 오늘 부르고스까지 가려고 했지만 한번 끊어 가는 것이 낫겠다 판단이 됐다. 리오피코라는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 왓츠앱으로 예약했다. 십자가가 있는 산 정상에서 바라본 부르고스 방향은 장관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내리막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된 길을 만났다. 다행이었다. 쉴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부지런히 걸어 리오피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응? 여기가 아니야? 리오피코는 맞는데 이곳은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였다. 내가 예약한 알베르게는 여기서 삼십 분 정도 더 걸어야 나오는 오르바네하 리오피코였던 것이다.
마침, 점심시간인 데다 너무 지쳐있던 난 카르데뉴엘라 리오피코에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순례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순례자 메뉴를 시켰다. 전식, 본식, 후식 이렇게 코스로 요리를 먹을 수 있고 나름 저렴했다. 와인이나 물이 포함되었는데 난 당연히 와인을 주문했다. 하루에 와인이나 맥주를 안 마시는 날이 없다. 주문한 전식이 나왔는데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냥 이것만 먹어도 될 듯싶다. 하지만 너무 배고팠던 난 후식까지 완벽히 비워냈다.
차는 물론,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시골 도로를 걸어 오늘의 목적지 오르바네하 리오피코에 도착했다. 사람의 말소리도 듣기 힘든 적막한 동네였다. 호스트의 안내로 2층 숙소에 올라가니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인 걸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건가?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오늘 예약은 나 혼자라고 했다. 간혹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에서 혼자 잤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호스트마저 저녁 8시쯤 되니 퇴근한다며, 나에게 아침에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버렸다. 내일은 출근하지 않으니 아무 때나 나가도 된다는 친절한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
PS. 돌밭 길을 걸으며 유심히 보니, 사람 마음은 다 같은지 돌밭 길 사이사이 조금이라도 나은 곳을 밟고 가려는 노력의 흔적들이 보였다. 문득 인생도 이런 것 같다고 느꼈다. 삶의 각종 문제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돌밭은 내 발바닥을 더욱 아프게 했고, 자칫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 뻔해 보였다. 하지만 큰 돌을 밟고 한 걸음씩 내디디면 오히려 나아가기가 수월했다. 내 앞의 문제를 피하지 말고 과감히 딛고 일어서는 용기가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