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바네하 리오피코 - 부르고스 12.5km
아무도 없는 고요한 알베르게에서 정말 오랜만에 푹 잤다. 오늘은 부르고스까지 걸어야 할 거리도 얼마 되지 않아 아침부터 여유를 부렸다. 여전히 쌀쌀한 공기를 마시며, 아픈 무릎에 보호대를 힘껏 채우고 출발했다. 부르고스 전에 있는 빌라프리아에 도착해 간단한 식사를 했는데, 골목마다 똑같이 생긴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다. 아마도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건설을 한 모양이었다.
부르고스 중심부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커다란 스페인 국기가 펄럭이고 있는 건물을 지나고 있었다. 안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정문에는 군인들이 여럿 서 있었다. 난 잠시 멈춰 구경하고 있는데, 완장을 찬 군인들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난 혹시나 뒤돌아봤지만, 내 뒤엔 아무도 없었다. 나에게 오라고 하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난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계속되는 그들의 손짓에 호기심이 생긴 난 결국 안으로 들어갔다. 나에게 순례자냐고 묻더니 오늘은 스페인 군대를 홍보하는 행사 중이니 구경하고 가라는 것이다. 건물 왼편 잔디광장엔 탱크를 비롯해 각종 군용 장비가 전시 중이었고, 사람들이 직접 올라가 체험하도록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스페인 전쟁기념관이었다. 이미 많은 어린아이가 신이 난 듯 이것저것 만지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난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육군 병장 출신인데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입구에 있던 군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난 다시 순례길 표지를 찾아 나섰다. 시내 길을 걸어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이번엔 심상치 않은 웅장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가던 방향을 틀어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엔 시립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던 곳으로 들어갔다. 설명을 보니 성당이었던 곳이었는데, 외벽만 남아 있는 곳의 안쪽에 무대를 만들어 연주회를 하는 장소로 탈바꿈시킨 것이었다. 마침, 오늘은 부르고스 관현악단의 연주회가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지막 연습을 마친 상태였고 30분 후에 정식 연주회가 시작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연주회를 보고 가기로 하고 바로 앞에 있던 Bar에서 맥주와 핀초 하나를 먹으며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연주자들도 잠시 들러 간단히 요기하고 준비하러 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다시 연주회장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시작된 연주회는 그 장소가 주는 분위기와 소리의 울림이 너무 환상적이었다. 남산 국립극장에서도 이런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입장료도 무료인 이 공연은 부르고스 관현악단의 정기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