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바네하 리오피코 - 부르고스 12.5km
연주회의 긴 여운을 뒤로 하고 부르고스 대성당 근처에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 여기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한 나는 오늘은 호텔에서 내일은 공립 알베르게에서 쉬기로 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부르고스 대성당으로 향했다.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가져가면 대성당 입장료를 할인해 줬다. 성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다. 부르고스 대성당에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을 구한 영웅 ‘엘 시드’ 부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본 가장 큰 성당이었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 전부 사람이 직접 깎아 만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놀라웠다. 그 옛날 어떻게 이런 정교하고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었을까? 성당 내부의 화려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조용히 자기만의 방법으로 그 경건함을 느끼고 있었다. 얼핏 봐도 오래돼 보이는 기다란 의자에 잠시 앉아 보았다. 정면에는 성경 속 이야기를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한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성당을 나와 그곳으로 향했다. 휴대전화에서 가리키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어떤 메뉴를 먹을지 고민했다. 김치찌개도 먹고 싶고 제육볶음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잔뜩 기대하고 도착한 그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잘못 찾아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곳이 맞다. 구글맵에 나와 있는 정보란을 눌러보고서야 오늘이 정기 휴일임을 알게 됐다. 그럼, 내일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일까지 휴일이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곳이 별로 없었기에 가장 가까운 가게에서 피자와 맥주로 허기를 달래고 호텔로 향했다. 다음 날 점심 무렵 난 호텔에서 나와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정보에 의하면 저렴한 가격에 시설도 훌륭하다고 했다. 대신 일찍 가서 미리 줄을 서야 한다는 것도. 내가 도착한 시간에 이미 꽤 많은 순례자가 와 있었다. 어제보다는 따뜻한 날씨였고,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부셔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어제 먹지 못한 한식 대신 일식집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고, 대성당 앞으로 나왔는데 사람이 굉장히 많이 모여있었다. 잠시 후 족히 3미터는 돼 보이는 커다란 인형 탈 무리가 내 앞으로 와 섰다. 어! 이 장면 어디선가 봤는데! 잠시 기억을 헤집고 헤집어 보니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본 장면이었다. 여기였구나. 부르고스. 잠시 멈춰있던 인형 행렬은 다시 음악 소리에 맞춰 대성당 앞에 줄 세워졌다.
수많은 사람들로 혼잡해진 대성당 앞에서 한국인 어르신들을 몇 분 다시 만났다. 그중 한 분이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 행사라며 알려주셨다. 조금 있으니 대성당 문 앞으로 사람들이 이동했다. 나도 따라가 보니 성당 안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자 아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어린 사제들이 나오고, 군악대를 연상시키는 합주단이 연주하며 따라 나왔다. 다음으로는 면사포를 한 여성들이, 그다음은 은색 지팡이를 든 남성들이 나왔고, 이어서 사제들이 줄지어 행진을 이어갔다.
부르고스 구시가지 곳곳을 돌아 해 질 녘 대성당 앞으로 다시 모여 대주교의 축복기도를 마지막으로 행진은 끝이 났다. 행사는 끝이 났지만, 대성당 앞 광장에는 사람들의 열기가 한동안 식지 않고 이어졌다. 순례길을 걸으며 화면에서만 보던 장면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와있다는 기쁨과 비현실적인 느낌이 묘하게 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소비하는 데 지출하지 말고, 경험을 사는 데 돈을 쓰라고 말했다. 지금 내가 산 이 경험들이 나의 인생을 한껏 풍족하게 할 것을 느꼈다.
PS. 순례길을 걷다 보면 작은 마을이라도 성당이 최소한 한 개에서, 많게는 두서너 개씩 있다. 대부분 머무는 사제가 없어 문이 닫혀있다. 종탑은 새들의 집이 되었고, 안뜰엔 십자가 모양의 비석이 즐비하다. 스페인은 오래전부터 성인(聖人)의 시신을 성당 안에 안치하곤 했는데,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길 천국에 가려면 자신도 성당 안에 묻히길 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둘씩 성당에 묘지를 만들다 보니 성당 하나로 부족하게 되었고, 묘지를 위해 뜰이 넓고 건물은 작은 성당을 마을 외곽에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