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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비움의 힘

파꽃-이문재

by 소걸음

20. 비움의 힘/파꽃-이문재


파꽃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 『제국호텔』, 이문재, 문학과동네(2004.12.10)



며칠 전, 철거를 앞둔 도서관에서 4박스나 되는 책을 가져왔다. 책을 고르면서 한번, 싸면서 한번, 다시 옮기면서 한번. 아직 풀지 못한 책 꾸러미를 바라보며, 나의 지나친 책 욕심에 대해 매일 반성하는 중이다.


파가 자라는 이유가 ‘속을 비우기 위해서’라니, 파꽃이 둥글수록 ‘속을 잘 비워낸 것’이라니. 시인은 성장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내면의 비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우리네 인생 또한 결국 비워내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비움이 가장 단단한 자립의 방식이라는 것. 삶의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꼿꼿하게 홀로 선 파’처럼 속을 비워내야 하지 않을까.


짧지만 강렬한 이 시는 내 안에 쌓아둔 욕심과 미련을 돌아보게 한다. 비우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다짐하게 되었다. 비우고, 가벼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비움의 힘을 삶 속에서 더 자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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