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미 와 있는 봄

봄-이성부

by 소걸음

06. 이미 와 있는 봄/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우리들의 양식』(이성부 시선), 이성부, 민음사(2006.08.25)




이성부 시인의 「봄」을 읽고 쓴 답시 - 이미 와 있는 봄


이미 와 있는 봄


민주화가 아니어도

자유라는 이름 없어도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입춘 꽃샘바람에

김칫독은 얼어 터지고

단칸방 모자란 이불 아래

몸들이 겹쳐 눕는다


부딪히다 와락,

그 온기 하나로

봄은 이미 와 있다


봄은 영웅의 승리가 아니라

시린 겨울을 함께 견딘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 속에

먼저 둥지를 튼다


계절은 필연,

당신도 필연

더디다 생각했지만

봄은 피어 있었다


그러니 이제

가슴 펴고 고개 들어라

봄 길 위로 꽃은 피고

또 피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