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려면-천양희
시인이 되려면
시인이 되려면
새벽하늘의 견명성(見明星)같이
밤에도 자지 않는 새같이
잘 때에도 눈뜨고 자는 물고기같이
몸 안에 얼음세포를 가진 나무같이
첫 꽃을 피우려고 25년 기다리는 사막만년청풀같이
1kg의 꿀을 위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가는 벌같이
성충이 되려고 25번 허물 벗는 하루살이같이
얼음구멍을 찾는 돌고래같이
하루에도 70만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 『너무 많은 입』, 천양희, 창비(2005.05.06)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어야 한다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되고 싶어 20대 후반에 시를 공부한 적이 있다.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시 한 편을 써 가면 함께 공부하던 시인 지망생들이 서럽도록 냉정하게 평해주곤 했다. 그 평가에 따라 일주일의 기분이 좌우될 만큼,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던 시절이었다. 좋은 시를 많이 읽으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작정 읽었다. 하지만 정작 좋은 시를 쓰지는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시인은 어쩌면 도인(道人)이거나 도사(道士) 일지도 모른다고.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다시 시를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에 스며든 시’와 ‘세 줄 시로 시인 흉내 내기’를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하고 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시인이 되어보려 한다. “제 스스로를 부르며 울” 준비를 하면서. 시인이었던 “견명성같이”, “하루에도 70만번씩 철썩이는 파도같이” 말이다. 설령 끝내 시인이 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나는 이미 그 길 위에 있다는 걸 알기에.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가다듬고, 군더더기 없는 단정하고 담백한 시를 쓰고 싶다. 어설픈 내 삶을 다듬어가듯, 내 시도 함께 다듬어지기를 바라면서. “성충이 되기 위해 하루에 스물다섯 번 허물을 벗는 하루살이처럼”, 나도 시인이 되려 한다. 아니, 간절히 되고 싶다. “시인이 되는 것”, 그것은 “자신이 가장 쓸쓸하고 가난하고 높고 외로울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소걸음으로, 그러나 끝까지 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