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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1. 연극영화과 입시생

#입시에서 떨어지다

by naguene Dec 19. 2024

부모님에게 받은 하얀 봉투 속에 담긴 학원비 70만원을 방금 사무처에 납부했다. 그리고 시끌벅적 합격소식을 나누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복도를 지나 사무실 한 층 아래에 있는 연습실로 내려왔다. 안톤체홉 <갈매기>의 트레플레프의 독백이 담긴 종이 한 장을 가방에서 꺼내어 글자 하나하나 다시 곱씹어본다.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친한 입시생 친구들의 수다가 가득했던 단톡방은 오늘따라 고요하다.


학창 시절 내내, 무언가 특별히 되고 싶은 적도 없었고 비상한 나만의 철학이나 비전이 있어 남들은 이해 못 하는 나만의 삶의 방식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냥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나름 성실히 하던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시절, 나는 평범한 내 삶에 대격변을 일으킬만한 '꿈'을 가져버렸다. 학교 친구들은 어이가 없는 듯 웃어넘겼고, 부모님은 말없이 생각에 잠기신 듯 보였다.


겨우 부모님을 설득해 들어온 이 연기학원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넘어온 나와 같은 꿈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 방과 후 수학학원을 가거나 학교에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또래들과는 달리, 우리는 제각각 다른 교복을 입고 이 연기학원으로 모였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함께 연습하고 격려했다. 고되기도 했지만 서로가 참 즐거웠다.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도 같다.


오늘 학원에 오기 전, 집에 들러 부모님께 재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괜찮다 말씀하시며 건네주신 학원비 봉투에는 무언가 어수선함이 묻어있었다. 우리 집 형편에 학원비 70만원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매달 조용히 대출을 받아 학원비를 주고 계시다는 걸 최근에야 얼핏 알았지만,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들이 차올랐지만, 최대한 무시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아들에게 생긴 그 꿈을 응원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자식들에게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오롯이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걱정거리가 봉투를 건네는 손보다 순간 먼저 앞섰던 걸까? 차라리 알고 싶지 않았다.


오늘따라 연습실 거울 속은 참 광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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