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테라피 2. 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거창하게 꿈에 대해 얘기해보자. 생각해보면 거창하다고 할 것까진 없지만, 암튼 꿈은 거창한 거니까.
태어나서 처음 꿈이란 걸 가져본 게 일곱살 때였던 것 같다. 7살이면 몇 년 전이냐, 1983년에 난 과학자가 돼서 로봇청소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날마다 청소하는 엄마를 쉬게 해드리려고 생각한 꿈이었다. 하~~ 첫 꿈을 이룬 건가? 난 가전제품을 만드는 개발자다. 로봇청소기 회사에 입사하진 못했지만 여러 가전제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15년 째 살고 있다. 난 개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이걸 꿈이라고 하기엔 좀 뭐시기하다. 그럼 정말 꿈이란 걸 가져본 게 뭐였을까?
그 다음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그것도 국어선생님. 난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되어 학생들 가르치며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성적이 문제. 아핫. 국어선생님을 하기엔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잉? 이게 웬 개소리? 국어선생님을 하기엔 영어실력이 부족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근데 사실이다. 난 영어를 너무 못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국어선생님이 되려는데 영어를 못해서 못 됐다니 정말이지 너무 웃긴다. 암튼 난 국어선생님을 포기했어도 소설은 쓰고 있다. 소설 쓰기는 영어실력이 부족해도 상관 없기에... 으핫. (여기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내 고등학교 성적표를 잠시 소개하면, 내 성적표는 수수수수수수수수 가 수수수수수 였다. '가'는 영어. 이제 이해가 좀 될 것이다.)
영어를 못해서 국어선생님을 포기하고 식당에 들어가서 요리를 했다. 근데 이게 웬걸. 적성에 딱 맞는 거였다. 요리가 너무 재밌더라는 것. 난 요리를 미친듯이 배웠다. 아침10시 출근에 밤10시 퇴근이 정해진 근무시간이었지만, 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일했다. 그냥 요리가 미치도록 좋았다. 다른 요리사들은 정해진 일만 하고는 쉬었지만, 난 내 일을 마치고는 남의 일까지 전부 거들어줬다. 칼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쪼가리 시간만 나면 칼을 갈았고, 칼질을 배우기 위해 채소란 채소는 내가 다 썰었다. 모든 채소를 내가 썰려고 2시간이나 먼저 출근한 것. 내가 일했던 식당은 한식 전문점이었고 700석이나 되는 큰 식당이었다. (내 소설 '사랑은 냉면처럼'의 배경과 비슷하다.) 조리사만 20여명인 이 큰 식당에서 난 겨우 20살짜리 막내였다. 난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열정은 가장 뜨거웠다. 이런 사람이 사고친다. 딱 1년이 지나 21살이 되어서는 식당 내 20여 명 중에 내가 칼질을 3번째로 잘했다. 위에 수두룩한 선배들이 질투를 했음은 당연하다. 주방장은 참 신기한 녀석이라고 내게 특별히 여러 기술들을 알려줬을 정도다. 대단한 놈이라고, 일 낼 놈이라고, 큰 요리사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직업은 개발자다.
어쩌면 난 "되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과 "꿈"을 구분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로봇청소기를 만드는 과학자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국어선생님이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일류요리사가 되는 건 꿈이 아니었다. 내 꿈은 "소설가"였을 뿐이며 앞으로도 "소설가" 뿐이다. 그래서 난 소설을 쓴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소설을 쓴다. 출판사들이 내 소설을 거절하고 거절해도 난 계속 쓴다. 왜냐면, 꿈이니까.
그런데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쓰는 것만 해도 될까?
"난 1만시간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가 중요하다."
_ 강레오 《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중에서
식당에서 일하며 일류요리사를 갈망하던 그시절 만큼 노력하고 있는 걸까? 남들보다 2시간 먼저 출근해서 내 일 다 끝내고 다른 사람들 일까지 뺏어서 했던 열정만큼 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밤을 지새며 소설을 쓴다. 그런데 난 이름표만 작가지망생은 아닐까? '얼마나 많은 글을 쓰며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글을 썼는지가 중요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에서처럼 나를 만드는 건 날이 선 '날'일 것이다. 칼질의 생명은 칼날이다. 칼이 잘 들어야 채소가 동일한 크기로 썰린다. 내가 20여명의 조리사 중에 3번째로 칼질을 잘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날이 선 칼날 덕분이었다. 나는 칼에 날을 세우기 위해 칼 가는 법을 터득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갈고 갈고 또 갈았다. 계속 갈았다. 그렇게 나는 칼 가는 법을 터득했고 내 칼은 식당에서 3번째로 잘 드는 칼이 되었다. 칼날이 무뎌지면 내가 원하는 대로 채소를 썰 수 없다. 요리의 생명은 칼질이다. 그렇다면 소설쓰기의 생명은 뭘까? 난 '글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에서 나온다'라는 기성작가들의 조언에 기대에 오늘도 엉덩이로 글을 쓴다. 언젠가는 소설가가 될 날이 오겠지.
오늘 이 작은 책이 내게 묻는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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