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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진 Jan 11. 2016

칠레의 위대한 시인 네루다

독서테라피 3.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칠레 시인 네루다를 아시나요? 세계문학을 읽으니 좋은 시인도 알게 되어 좋습니다. 이 책은 독서모임 제제 선정도서로 읽었습니다. 평소 번역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민음사 번역을 매우 싫어하기에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아니라면 평생 읽지 않았을 소설입니다. 민음사 번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은 예외였습니다.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거든요. 은유적 표현도 알맞게 잘 번역했고 문장 흐름도 매우 좋습니다.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번역투도 거의 찾지 못할 정도입니다. 다만 아쉬운 건 '메타포'를 그대로 '메타포'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은유'라고 번역하면 될 것을 그냥 폼나 보이게 하려고 '메타포'로 번역한 것인지, '은유'와 '메타포'의 의미가 달라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2% 부족한 민음사입니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photo-1087222/

  책을 읽기 전엔 '네루다'라는 지역의 우편배달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네루다'가 사람이더군요. 우편배달부라면 어느 특정 지역을 배달할 텐데 왜 네루다의 소유인 것처럼 제목을 지었을까요? 우편배달부가 네루다에게만 배달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네루다 뿐이기에 수신인은 단 한 명 네루다 뿐이거든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우편배달부의 이름은 '마리오'입니다. 그는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배달부가 되어 그에게 메타포를 배웁니다. 네루다의 시집을 사서 읽고 읽고 또 읽으며 메타포를 사용해 사랑스런 여인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마리오가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책 곳곳에서 메타포가 나오는데요, 베아트리스 어머니가 마리오와 만나지 말라는 말을 할 때도 메타포가 나옵니다. 마치 이 마을 주민들은 모두 메타포가 일상인 것처럼요. 너도나도 메타포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소설 곳곳에서 등장하는 메타포는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사진출처 https://pixabay.com/photo-1056324/

  이야기의 흐름은 마리오가 중심이지만 이 소설은 시인 네루다의 이야기입니다. 실존 인물 네루다와 가상의 인물 마리오의 우정을 통해 인간적인 네루다의 모습을 그립니다.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시인에게 헌사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마음도 함께요. 소설 마지막 부분에 결국 군 쿠데타가 일어나고 네루다가 죽습니다. 마리오는 네루다와의 우정을 지키다가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제가 책리뷰에 이렇게 스포일러일 수 있는 결말까지 적는 이유는, 이 소설은 결말보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메타포가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리보다 문장 읽는 맛이 뛰어난 소설입니다. 기교부린 문장에 신물이 나서 깔끔하면서도 멋진 문장을 읽고 싶은 분에게 딱입니다.

  소설을 덮으며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스무살 시절, 시에 미쳐 시집에 파묻혀 살던 시절. 저는 마리오처럼 네루다같은 시인과 우정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특별히 좋아하는 시인을 팬사인회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시인과는 페이스북 친구인데, 저를 알아보고 제 이름도 기억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시인이 있어서인지 마리오와 네루다의 관계가 조금은 느껴졌답니다.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도 읽고 싶어졌고 영화 <일 포스티노>도 보고 싶어졌습니다. 소설에서 인용한 시는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에 나오는 시이며, 이 소설은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이라고 합니다. 영화와 소설은 결말이 좀 다르다고 하는데요, 쉿!


"그도 저를 쳐다보았어요. 그러고는 제 눈을 응시하다 말고 마치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제 머릿결을 한참 쳐다보는 거예요. 그러고는 '그대 머리카락을 낱낱이 세어 하나하나 예찬하자면 시간이 모자라겠구려.' 그러더라고요." (63쪽)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혹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67쪽)


비틀즈의 <우체부> 멜로디가 응접실에 퍼졌다. 그러자 뱃머리 장식들이 움찔움찔, 병 속의 돛단배들이 출렁출렁, 아프리카 가면들이 이빨을 으드득으드득, 응접실 돌들이 들썩들썩, 나무에 홈이 쩌억쩌억, 의자의 은 세공이 너울너울, 서까래의 죽은 친구들이 덩실덩실, 오랫동안 꺼져 있던 담뱃대들이 푸우푸우, 벽을 뒤덮은 벨 에포크 화류계 여인들의 향수가 스멀스멀, 푸른 말이 다그닥다그닥, 휘트먼 시의 고색창연한 기관차가 기적을 울렸다.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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