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불안하기
나님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을 부비적 거리며 말했다.
“불안해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내가 떠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한 불안은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게 했단다.
“나님 그 사람이랑 헤어져. 나이 많은 남자는 어린 여자랑 자려고 만나는 거야.”
“나님 다시 생각해봐. 내가 나이 많은 남자랑 살아보니까 처음에는 오빠 같고 좋은데, 나중에는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지적만 해.”
“나님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랑 살 수 있겠어? 넌 감당하기 힘들 거야.”
“나님...”
“나님..................”
“나님.........................................”............
부모님, 아는 언니, 직장 동료 등등 어른들은 말이 참 많다. 그 말에는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이유는 없고 헤어져야 할 이유뿐이다. 그 말들과 함께 내 행동이 나님을 불안하게 하나보다.
최근 들어 나님과 나는 함께 살자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이 극장의 프로그램이라면 첫 타임은 어떤 영화로 채울 것인지, 특별 기획전은 어떻게 꾸릴 것인지, 올빼미 상영관은 할 건지 말 건지 상상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상상하는 와중에 나님은 불쑥 우리가 잘 살 수 있을지 불안한 듯 묻고, 나는 그 불안을 불안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넘어간다.
함께 살기 위해선 혼자 살기에 최적화된 몸을 바꿔야 한다. 나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고, 나님은 귀찮은 상태기에 나는 배를 줄여야 하고, 나님은 생활에서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나는 언어와 행동을 섬세하게 다듬어야 하고, 나님은 주변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런 진단과 지적이 나님에게는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급기야 “배하나는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봐요.”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건넨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며 우리의 사랑은 지워진다
나 역시 멍청한 생각에 휩싸인다. 어른들의 염려를 전해 들으면 ‘헤어진다면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나님만큼은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서글퍼지면서, 나님의 긴 삶을 위해서 보내줘야 하는 건 아닌지, 어리석은 생각에 얼굴이 굳어진다. 나이 많고 가난하고 고집 센 나만 아니면, 지금보다 덜 잔소릴 듣고 덜 불안해하지 않을까? 혼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나님을 혼자 내버려 두고 내게 집중하면서, 우리의 사랑은 지워진다.
이럴때면 나님은 그만 싸우고 싶다는 말을 힘겹게 건넨다. 나는 그 말이 불안하다. 어른들에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삶은 투쟁의 연속이라는 걸 뼈 속 깊이 안다. 평생을 못난 자신과도 싸워야 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싸워야 하고, 내가 만든 적과도 싸워야 하고, 이래저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걸 알기에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은, 너와 삶을 나누고 싶지 않은 상태로 나아가는 것 같다. 어른들의 말에서 시작한 불안은 결국 우리 사랑을 없애고 함께 살 수 없는 상태로 향하는 것이다.
나는 어른의 말을 듣는 걸 좋아한다. 무용담을 듣는 건 딱 질색이지만 실패로 얻은 깨달음은 경청할만하다. 그 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자신의 불안과 실패를 교훈 삼아 너의 삶을 나아가라는 어른의 말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어른의 말은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거나 지적하거나 충고하는 게 아니라 자신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말로 존재해야 한다. 그 말은 불안 속에 휩싸인 나를 위로하고,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만든다. 그렇게 존재해야 할 말이 상대방의 삶을 흔들면서 위력을 가지는 이상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래서 어른이 되는 게 두렵다.
알몸으로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태어난 인간의 불안은 어쩌면 필연이다. 내가 나로 서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하니,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원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본은 불안을 상품화해서 나를 무너뜨리고 서로를 경쟁시키면서 불안을 확대 재 생산하고 있다. 그렇게 길들여진 우리는 불안의 개미지옥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하지만 본래 삶에서의 불안은 나로 설 수 있고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는 질문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나와 너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질문하게 하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게, 불안이 탄생한 목적일 것이다. 우리는 상품화된 불안 속에서 너무 놀아나고 있다. 그래서 불안을 이야기할 때면 한숨을 쉬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불안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상대방과 우리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살아가고 싶다. 불안해하는 이들의 불안을 부추기지 않고, 불안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내 삶을 내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와 너와 우리의 불안을 공유하고, 함께 질문을 찾고, 긍정적인 방향을 잡아, 나님과 바지런히 우리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불안한 당신, 오늘 내일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