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징크스

매년 돌아오는 공포

by 나희구

누군가는 1년을 기다리는 생일, 내겐 공포다. 생일이 되면 반드시 다친다.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심지어 태어난 날조차 두개골이 골절되며 세상에 나왔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생일 징크스 최초의 기억은 7살이다. (내가 기억을 못 할 뿐 당연히 그전부터 다쳐온 유구한 역사가 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무리했다가 중심을 잘못 잡아 그네에서 떨어졌다. 그날 팔에 깁스했다.


17살 생일도 아주 가관이었다. 그날은 다치기 딱 좋은 학교 체육대회 날이었다. 고심 끝에 제일 안 다칠 수 있는 종목을 골랐다. 이어달리기였다. 씨름이나 줄다리기처럼 남들과 접촉하는 경기가 아니고, 우리 반엔 미안하지만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면 될 터였다. 애초에 이길 생각으로 나가는 게 아니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목표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함성과 함께 선수들이 뛰었다. 나는 마지막 주자였다. 우리 팀 첫 주자가 너무 잘 달려서 1등으로 들어왔다. 다음 주자에게 배턴 터치를 했고, 퀵 오토바이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다른 선수들과 확연한 격차가 났다. 잘하면 내가 설렁설렁 뛰어도 1등 할 수 있을 듯했다. 이어서 세 번째 선수가 달려 나갔고 곧 내 차례였다. 다들 죽도록 뛰었다. 내 몸만 생각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드디어 내 손에 배턴이 쥐어졌다.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서서히 다른 반 선수들과 격차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나는 곧 추월당했다. 이대로 친구들의 기대를 모르는 척할 것이냐, 아니면 최선을 다할 것이냐. 남은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난 친구들의 기쁨을 택하기로 했다. 앞서 있는 하나의 머리만 보고 뛰었다. 어렵지 않게 따라잡았다. 상황은 역전되어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더했다. 결승선 테이프에 몸을 맡겼다. 난 1등과 동시에 발목을 접질렸다.


20살 생일은 참 기이했다.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해서 다쳤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에 가는 바람에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이 말은 곧 내 미역국은 내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소리다. 생일날 어떻게 미역국을 안 먹을 수 있겠는가.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을 떠올리며, 인터넷을 참고해 직접 끓였다. 그냥 사 먹어야 했는데.


미역을 불리고 냄비에 넣는 것까진 전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완성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에게 생일 징크스가 있다는 걸 잠시 망각할 정도였다. 완성된 미역국이 담긴 냄비를 다른 식탁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다. 냄비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데 몸체를 잡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펄펄 끓는 뜨거운 몸체를 잡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화상을 입었다.


25살 생일은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시기에 자전거가 정말 갖고 싶었다. 출퇴근용으로 한 대 장만하고 싶었다. 자전거도 다칠 가능성이 농후해서 주변에서 반대했지만, 몰래 샀다. 매우 후회한다. 다 내 불찰이다.


자전거를 처음 개시하는 날 겸 내 생일이었다. 아늑한 햇빛이 비쳐서 아무런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과의 조화마저 완벽한 날씨여서 자전거를 끌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3km 떨어진 곳까지 갔을 때였다.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폭우가 쏟아졌다. 지갑을 안 들고 나와서 카페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페달을 밟았다. 왜 일기예보를 안 보고 나왔을까? 스스로를 원망하며 최대한 서둘러 갔다. 비 오는 날 자전거 타는 일이 정말 위험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미끄러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제 지인들은 축하한다는 말 대신 오늘은 절대 다치지 말라며 생일 인사를 하곤 한다. 내 운명이 싫다. 작년 33살 생일 때도 허리 디스크 수술 때문에 병원 신세를 졌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수술이 끝난 후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다짐했다. 내년엔 이 고통의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버리겠다고. 더는 다친 신체를 회복할 체력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34살 생일인 오늘은 회사에 연차를 냈다. 절대 안 나가고 집에만 있을 예정이다. 혹시 몰라 가스 밸브는 잠갔는지, 화장실 바닥이 지나치게 미끄럽진 않은지, 창문도 다 닫혀 있는지, 누전 차단기는 멀쩡한지 등 위험 요소를 점검했다.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처럼 무심코 건드렸다가 다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은 상자에 봉인해 버렸다.


그래도 생일이라 미역국은 먹고 싶었다. 화상 트라우마로 인한 단 하나의 선택지, 배달 앱을 켰다. 평균 별점 5개인 가게의 미역국을 주문하고 도착하길 기다렸다. 심심하긴 해도 나가서 불안에 떠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30분 뒤에 도착한 미역국을 맛있게 먹고 만약을 대비해서 아프지 않지만 소화제를 먹었다. 식곤증을 느끼며 낮잠도 잤다. 잠에서 깨니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은 굶고 소파에만 누워 시간을 보냈다. 신기했다. 이렇게 조용한 생일을 보낸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목표한 대로 다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내 운명이 바뀌었다. 인간의 승리다. 비극적인 운명도 인간의 굳은 의지 앞에선 무용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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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징크스는 이대로 막을 내린 걸까?

1년 뒤, 악순환이 끊긴 걸 기념하는 여행을 계획했다. 다가오는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은 남달랐다. 올해 생일은 거하게 보내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항공권을 끊었다. 꿈의 여행지인 뉴욕에 갈 예정이었다. 도심 속 드넓은 공원 안에서 베이글을 먹는 로망이 있었다. 첫 생일 로망을 이뤄줄 따뜻한 베이글을 품에 안고 앉을 곳을 찾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웅성댔고, 공원은 혼란스러웠다. 생존 본능이 베이글을 버리고 도망가라고 다그쳤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무작정 달렸다. 소음은 끊이지 않았고,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뒤통수가 아팠다. 무엇인가 내 머리를 관통한 듯했다. 힘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현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 자꾸 눈이 감기고 시야가 희미해졌다. 뒤통수에선 축축한 느낌이 난다. 얼마나 많이 쏟은 건지 피 냄새가 진동한다. 누군가 영어로 괜찮냐고 물으며 내 몸을 흔든다. 그 사람 손에도 피가 묻었다. 자꾸 졸리다. 영원히 자게 되는 걸까.

비극적인 운명은 없어진 게 아니라 뒤로 밀려났을 뿐이었다. 징크스는 내가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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