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도 표시계

저 사람의 진심은 몇 점일까?

by 나희구

이 특별한 기계는 세상에서 나만 소유하고 있다. 일명 ‘호감도 표시계’로 기능을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기계와 연결된 금속 패치를 팔목에 붙이면, 신체 변화를 인식하여 눈앞에 있는 사람을 향한 호감도를 숫자로 표시한다. 1~20은 비호감 수치고, 21~49는 좋지도 싫지도 않고, 50~70은 인류애에 기반한 보통의 호감이며, 80부터는 어떤 종류가 됐던 사랑이다.


기계를 사용하고 싶은 집단은 직장 동료들이다. 회사라는 공간 아래 서로 적당한 가면을 쓰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하하 호호 웃고 지내는 이들의 적나라한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호감도 표시계를 이용해 나만 알 수 있는 진실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이 궁금한 법이니까.


회사 사람들에겐 호감도 표시계가 아닌 맥박 데이터로 알아보는 건강 측정기라고 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호감도 표시계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누가 하겠는가.


첫 주자는 영업 팀 박규종 대리다. 나의 시커먼 속도 모른 채 박 대리는 신이 나서 패치를 붙였다. 나에 대한 그의 호감도를 체크해 보려 했더니, 구매팀 전호수 씨가 먼저 앞에 섰다. 아무나 서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너무 안 친한 사람이 선 게 아닌가 싶었다.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테스트용으로 하잔 생각으로 그냥 두었다.


패치를 붙인 손목을 책상에 가만히 올려놓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다른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숫자가 알아볼 수 없도록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갑자기 한 숫자로 멈췄다. 97이었다. 예상치 못한 숫자였다. 왜 사랑 수치가 떴지? 이건 최소한 규종 씨가 호수 씨를 짝사랑한다는 결과다. 아니면 커플 이거나.


“97이 뭐예요? 좋은 거예요?”


당혹스러운 내 속도 모르고 규종 씨가 해맑게 물었다. 호수 씨랑 무슨 사이냐고 묻고 싶은 걸 참고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거니 규종 씨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규종 씨는 올해 건강검진은 안 해도 되겠다며 휘파람을 불며 자리로 돌아갔다. 신기한 결과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게 이런 것 아니던가. 더 재밌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다. 잠시 내가 음흉해 보여 헛기침하고 자중했다.


“저도 해볼 수 있어요? 요즘 어지럼증이 심해져서요.”


우리 팀 유성연 부장이다.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왔다. 요즘 유 부장과 관련하여 돌고 있는 소문이 있었다. 당사자 모르게 진실 여부를 테스트해 보려는 내가 너무하다 싶었지만, 호기심이 뭘 망설이냐며 재촉했다.


“그럼요. 여기 앉으세요.”


유 부장을 의자에 앉히고 패치를 손목에 붙였다. 앞에 설 사람이 누군지를 계속 살폈다. 다행이다. 진실을 알려줄 사람이 섰다.


“시작할게요.”


화면 속 숫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번을 탈바꿈한 후 고정된 숫자는 3이었다. 하루 종일 상대방을 미워하며 보내는 듯하다.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병원 꼭 가보세요.”

“그래야겠네요. 병원 말고도 갈 데가 많아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앞에 선 상대방을 노려봤던 것 같기도 하다.


유 부장의 호감 수치를 테스트한 상대는 긴 비밀 사내 연애 끝에 결혼한, 유 부장의 배우자인 한석훈 과장이었다. 요즘 두 사람이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유책 배우자가 한 과장이라 유 부장이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이번엔 해수가 자기도 해보고 싶다며 말을 걸어왔다. 해수는 나의 직속 후배로 직장 동료로 시작한 사이치고는 학창 시절 친구 못지않게 친하다. 퇴근 후 같이 밥이나 술을 먹는 일쯤은 비일비재하고, 서로의 집에서 가끔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한다.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같이 놀러 다닐 정도로 각별하다. 심지어 직장 동료 중 유일하게 해수만 이모티콘을 붙여서 번호를 저장했다.


같은 과정을 거친 후 화면의 숫자가 고정되길 기다렸다. 한 78이나 79 정도 나오려나? 80 이상이 나오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뭐?”


화면에 뜬 숫자를 보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들이 놀라서 우리 쪽을 주목할 정도였다.


“18? 이거 낮을수록 건강 안 좋은 거죠? 큰일이네.”


호감도 표시계가 갑자기 연달아 재니까 오류 난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음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갑자기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다 연기였구나. 그러고 보니 밥이나 술, 함께 놀러 가는 것, 서로의 집에 자고 가는 것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먼저 제안했던 것들임을 깨달았다. 싫으면 싫다고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해수가 나를 안 좋아하는 건, 내가 이 기계의 주인인 게 원망스러울 정도의 타격이었다.


해수의 진심을 알게 된 후 더는 호감도 표시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게 책상 아래 내려놓고 다소 멍한 상태로 일하는 중이었다.


“괜찮은 건강 측정기가 있다며? 나도 해봐도 되나?”


아뿔싸.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 왔다. 정말이지 다신 저놈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님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나의 사회성은 직급에 특히나 약해서 호감도 표시계를 다시 책상 위로 고이 모셨다.

사람들이 대표님의 건강 상태가 궁금하다며 몰렸다. 내가 당하고 나니 빈정대는 마음이 생겼다. 과연 저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진짜 대표님을 걱정해서일까? 화면 속 숫자가 어지럽게 움직였고 방황 끝에 나타난 숫자는…….


“100이면 나 흠잡을 데 없이 건강한 거지?”


무심코 대표님 앞에 선 사람을 보았다. 아주 최근에 입사한, 목소리도 몇 번 들어보지 못한 신입 고세희 씨였다. 세희 씨를 향한 호감이 100? 이 둘은 또 언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대?


“네, 건강하시네요.”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나만 이죽거렸다. 딸뻘이랑 불륜도 하고 건강하긴 하겠지.

대표와 고세희의 불륜이 역해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같이 먹는 인사팀 다현이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너 밥을 왜 이렇게 조금 먹어?”


이 매스꺼움을 누군가와는 나눠야 조금이라도 해소될 듯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기적이다. 이래서 해수가 나 싫어하나 보다. 나는 건강 측정기는 사실 호감도 표시계고, 이를 통해 알게 된 대표와 고세희의 불륜을 털어놓았다. 다현이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다른 사실을 말해주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그 둘 불륜이 아니라 부녀 사이야. 대표가 곧 발표할 거랬어. 그때까진 모르는 척해.”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세희 씨에 대해 별생각 없었는데 불편해지게 생겼다. 적당한 관계로 지내는 사람들의 깊숙한 진심을 이젠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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