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여자친구로 살아가기
나 같은 평범한 비 유명인에게도 악플이 보내다니. 내심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모든 것의 시작은 형우가 유명해지고 나서부터였다.
3년째 평범한 연애를 이어오던 나와 형우 사이에 커다란 사건이 생겼다. 형우의 방송 출연이었다. 준수한 외모로 전문 지식을 뽐내고 온 형우는 인터넷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더니 다른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되며 명성을 얻었다. 교양 프로그램이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직장인이 되었다.
형우의 인기가 늘어갈수록 신경 쓰이는 게 생겼다. 형우가 나의 존재를 숨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우리는 암묵적으로 SNS에 서로의 사진을 올리진 않았다. 그래도 음식 사진에 살짝 나온 서로의 손 사진이나, 하트 가득한 레터링 케이크, 같이 찍은 그림자 사진처럼 연애 중임을 암시하는 글 정도는 올렸다. 그런데 형우의 팔로워가 오천 명이 넘어가자 게시물이 사라졌다. 심지어 혹시 여자 친구 있냐는 댓글엔 ‘맞혀보세요’라며 애매하게 답했다. 솔직히 자기가 연예인도 아니고 조금 유명한 직장인인데 유난 떠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심술이 났다. 비공개였던 내 SNS를 공개로 전환해 버렸다. 형우로 추정되는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러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정들이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게시글도 없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아이디들이었다. 부계정으로 팔로우해서 염탐하려는 듯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올리는 글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무서웠다. 한편으론 덕분에 팔로워가 상당히 늘어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고민 끝에 형우 관련 사진들은 지웠다. 수많은 모르는 눈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팔로워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다. 무엇보다 형우 팬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이제 막 잘되고 있는 사람을 굳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조용히 형우를 응원했는데 그는 아니었다. 말도 없이 나를 언팔로우해서 잠자는 내 심술의 코털을 건드렸다.
“왜 나 팔로우 끊었어?”
형우는 해명했지만 내 귀엔 다 핑계였다.
“곧 소속사 생길 거 같은데, 거기서 괜히 연애 문제로 말 나오지 않게 관리 잘해야 한다고 그래서.”
“너 연예인 하게? 회사는?”
“회사 그만뒀어. 전업 유튜버 할 거야.”
나도 모르는 새에 형우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그는 단 한 번도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상황이 와야 마지못해 알려줬다. 여자 친구로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연예인들도 인기 한순간인데 네가 무슨 수로 그걸 유지할 거라고 확신해? 일단 회사랑 병행하면서 하든가 해야지, 무작정 그만두면 어떡해. 네 인기는 직장인이었기에 가능했던 거 몰라? 회사 그만두고 유튜버 하면 사람들이 거기에 매력을 느끼겠어?”
매일 형우를 찬양하다시피 하는 댓글이 달리고, 아무리 방송 녹화가 늦게 끝나도 끝까지 형우를 기다리며 배웅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형우는 자의식 과잉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어코 어느 인플루언서 소속사와 계약했다. 유튜브 채널도 열었고 첫 영상을 통해 퇴사한 근황을 공개했다. 당연히 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시 내 SNS를 팔로우하지도 않았다.
형우 채널은 예상외로 순항을 달리고 있었다. 이젠 하다 하다 팬들을 직접 만나는 팬 미팅 행사를 준비 중이다. 나는 꼴값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겉으로는 잘해보라며 응원했다. 내가 제 일에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자, 팬 미팅 행사에 초대했다. 나도 형우의 팬들이 내심 궁금했다.
팬 미팅 행사는 1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열렸다. 3분 만에 매진 됐다는 소식에 형우 보다 내가 더 놀랐다. 객석은 빠짐없이 채워졌고, 형우는 팬들의 사랑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평소 나에게 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다정했다. 나한테도 잘 안 하는 사랑 한단 말을 남발했다. 형우의 손 하트를 받는 팬들을 보는 기분은 뭐랄까. 저렇게 인기 많은 사람의 애인이라 기분 좋았고, 대기실에 숨겨두는 건 기분 나빴다. 객석 한 자리 정도는 나를 위해 빼줄 거라 기대했다면 과한 욕심이었을까. 진짜는 나인데 왜 여기 숨어 있어야 하지?
왜 그랬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팬 미팅이 끝난 늦은 밤, 대기실에서 찍은 형우의 신발, 무대 의상, 메이크업받는 뒷모습을 내 SNS에 올렸다. 지극히 충동적으로 벌인 행동이었다. 바로 후회하고 1분 만에 지웠다. 그러자 DM이 왔다.
[언니^^ 나이 먹고 추해요~ 티 내고 싶어 죽겠어요?]
[작작 좀 하세요. 팬들이 바보라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다들 알면서 참고 있는 거예요.]
[진짜 여친이 맞긴 함??? 여친이 이렇게 남친 발목을 잡는다고???]
[관종 여친은 이래서 안 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람쥐]
웃겼다. 가짜 여자 친구들이 진짜 여자 친구한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는 게. 팬들이 나를 비난할수록 우월감만 들었다. 이 짜릿한 기분을 잊지 못해 더 과감해졌다. 계속 형우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렸다가 지우고 심지어 형우 목소리가 나오는 동영상까지 올렸다. 너희는 이런 거 못 찍잖아. 내 자리가 더욱 견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형우가 알게 되면 난리 나겠지만, 당장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어쩌다 DM으로 상스러운 욕이 올 때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게 쾌감인지 무서움인지 구분도 못 할 정도였다.
팬들과 총 없는 전쟁을 벌이던 중, 형우가 유튜브 스튜디오에 놀러 오라고 했다. 어떻게 찍는지 보여주고 싶단다. 난 팬들 놀릴 사진이나 찍자는 생각뿐이었다. 스튜디오는 형우 소속사 건물 지하에 있었다. 초록색 크로마키를 배경으로 형우는 카메라에 대고 혼자 말했다. 형우 얼굴이 나오지 않게 일하는 모습을 몰래 찍었다. 한창 찍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잠시 스튜디오를 나갔다.
통화를 마친 후 다시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서 형우와 소속사 관계자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언제 얘기할 거야?”
“좀 더 나중에요.”
“아까도 너 촬영하는 거 찍으시더라. 그것도 올리실까 싶어서 막으려다 너 봐서 참았어.”
뭘 얘기하라는 거지? 대화의 흐름으로 미루어보아, 나보고 사진 그만 올리게 하거나 헤어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건방진 직원이란 생각과 동시에 올 게 왔구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 올렸던 동영상은 내가 생각해도 심했다. 그때 별 욕을 다 먹었다.
“형, 전 지금이 좋아요.”
“더 잘 되려면 말려야 해.”
“아니요, 팬들 사랑도 좋고 여자 친구가 본인답지 않게 관종 짓 하는 것도 좋다고요. 저를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오염되었던 정신에 냉수마찰을 한 기분이었다. 다 알면서 즐기고 있었던 거야? 내가 욕먹을 동안? 물론 나도 일부분은 즐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 길로 소속사 건물을 나갔다. 모르는 사람들 약 올리는 건 그만하고, 여자 친구가 아닌 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