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의 나비효과

by 나희구

아침부터 동료들이 구토 경험담을 펼치는 이상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마치 나에게도 곧 구토 에피소드가 생길 것만 같은 구토감이 들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아빠였다. 이 대낮에 아빠한테 전화 오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심지어 울먹이고 있었다.


“…가 내 차에 토했어…….”


점심으로 먹은 순댓국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누가 아빠 차에 토했다고?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태완이가 23시 30분쯤에 아빠 차 키를 가지고 살금살금 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녀석은 나에게 들키자 윙크하며 오른손 검지를 제 입술에 갖다 댔다. 난 그저 한심하게 흘겨보고 말았다. 남동생이란.


“아빠, 다시 말해봐. 누가 토했다고?”


핸드폰을 귀에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반대쪽 귀는 손으로 막으며 오직 아빠의 말에만 집중했다.


“션둥이.”


잠시 뇌 작동이 멈췄다. 션둥이가 누구지? 옆집 햄스터 이름이 션둥이었나? 아닌데, 걔는 로미오인데. 윗집 토끼였나? 아니다, 걔는 덕배다. 후보를 모두 지우니 한 인물이 떠올랐다.


“걔가 어떻게?”


아빠는 대답 없이 클랙슨처럼 귀 따갑게 울었다. 내 귀로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동생 여자 친구가 아빠 차에 토했다는 거잖아.

박태완의 겉멋이 문제였다. 새벽에 몰래 나가는 그놈을 발견한 시각, 동생의 여자 친구 션둥이는 친구들과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태완이는 멋있게 등장하고 싶은 마음에 뽑은 지 5개월밖에 안 된 아빠 차를 끌고 션둥이를 데리러 갔다.

잔뜩 취한 여자 친구를 조수석에 겨우 태운 순간, 막을 새도 없이 션둥이가 사방에 뿜어댔다.


-


“태완인 왜 안 와?”

“아빠한테 미안하니까 못 들어오고 있나 보지. 근데 걔 여자 친구는 왜 션둥이라니?”

“이름은 시원인데 ‘시원 귀염둥이’를 줄여서 션둥이. 태완이는 탼둥이래.”

“둥이들 가지가지하네.”


엄마와 나는 거실 소파에 엎드려 몸을 들썩이고 있는 아빠의 등을 쓸었다. 하지만 아빠의 처참한 심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앞으로 조수석은 몽둥인지 탼둥인지만 타라고 해. 나는 비위 약해서 못 타.”


엄마의 말이 마침표를 찍자마자 잠금장치 누르는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대역 죄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아빠, 미안해.”


계속 엎드려 훌쩍 대던 아빠가 푹 젖은 얼굴을 들었다. 이마엔 옷소매 자국이 깊게 찍혀 있었고 눈은 부어서 뜬 건지 감은 건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아빠가 겨우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놈이 선수를 쳤다.


“일단 나랑 션둥이 친구들이 큰 건 바로 닦았어. 완벽하게 세차해놓을게! 그러니까 션둥이 미워하지 마. 션둥이도 지금 힘들어해.”


‘골 때린다’라는 말이 사람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 어이를 갈취당한 기분이었다. 이 일 때문은 아니지만, 둥이들은 6개월 후 헤어졌다. 여전히 태완이는 늘 조수석에 앉았다. 왜 조수석은 고정석인지 까먹을 때쯤, 태완이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


드디어 태완이를 완전히 보내버리는 날, 친척들에게 인사하러 가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오늘의 신랑이었다.


“누나, 잠깐 나 좀 봐.”


신랑 대기실 문이 닫히자마자 태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방 이곳저곳을 방정맞게 뛰어다녔다.


“누나! 어떡해! 시원이 왔어!”

“시원이가 누군데?”

“옛날에 아빠 차에 토했던 내 전 여자 친구! 션둥이!”


태완이의 호들갑으로 머릿속에 낀 김을 닦았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기억의 나무 밑에 깊게 묻어놓은 션둥이가 갑자기 제 스스로 땅을 파고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네가 불렀어?”

“당연히 아니지! 누나, 이거 연쁘니가 알면 안 돼. 결혼식에 남편 전 여자 친구가 온 걸 알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물론 난 떳떳하지만!”


나도 오늘의 신부 연희, 즉 연쁘니가 이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하필이면 전에 사귀던 사람이라니. 인터넷에서 본 치정에 의한 결혼식 난동 후기들이 머릿속을 재빠르게 스쳐 갔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넌 일단 결혼식에 집중해. 걔는 내가 전담마크 할게.”


나와 동생의 긴장 속에 결혼식은 예정대로 시작했다. 난 션둥이와 가깝지만 눈에 띄진 않는 구석에서 몰래 주시했다. 션둥이는 연쁘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시선은 연쁘니를 지나 태완에게, 심지어 우리 부모님에게까지 닿았다. 나는 보았다. 션둥이의 얼굴에 비친 착잡함이란 감정을.


갑자기 션둥이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식장을 나갔다. 주저하지 않고 나도 따라나섰다. 동생 결혼식을 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도록 해야 했다. 션둥이는 화장실로 향했다. 나도 따라 들어가 거울 보는 션둥이 옆에서 손을 씻었다. 션둥이가 놀랐는지 눈이 조금 커졌다. 혹시 나를 알아본 걸까? 두 사람이 헤어지기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말 걸면 어떡하지? 결혼식 다 끝날 때까지 여기서 붙잡고 있어야 하나? 만약 나를 도발한다면 기꺼이 받아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너무 씻어서 손이 새빨개질 무렵, 션둥이가 화장실을 나갔다.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따라갔다. 션둥이는 의외로 출입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건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본 후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극도의 긴장 상태를 경험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명이 10년은 가뿐히 줄어든 듯하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여기에 온 션둥이의 의중이 궁금하긴 했다. 좋게 헤어진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동생의 전 여자 친구 고민에 더 깊이 빠지기 전, 결혼식이 혼을 쏙 빼놓았다. 가족사진을 찍고, 신랑과 신부를 대신해서 잡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식장을 떠나야 했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탈의실에서 연쁘니 짐 챙기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길래 태완이인가 싶어 문을 열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집에 간 줄 알았던 션둥이였다.


“저…….”

“일단 나랑 얘기해요!”


이럴 땐 쥐도 새도 모르게 데리고 가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언성이 커졌다. 당연히 연쁘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연쁘니가 누구시냐고 물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럴 때 박태완은 어디 간 거야!


“언니, 제가 불렀어요.”


정적이 흘렀다. 션둥이를 부른 건 자신이라는 연쁘니의 말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까. 나와 다르게 연쁘니는 여유가 있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션둥이가 멋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니. 오랜만에 봬요. 저 연희 친구로 왔어요.”


난 입만 벌린 채 문에 딱 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탈의실 문에 걸린 리스 장식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내게 연쁘니가 웃으며 팔짱을 껴왔다.


“시원이가 아버님 차에 토했을 때 같이 닦아준 게 저예요.”


션둥이 친구들과 큰 건 바로 닦았다는 놈의 말이 생각났다. 그 자리에 연쁘니도 있었다니. 인연의 불씨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였다.


“태완이도 알아?”

“제가 시원이 친구인 걸 기억 못 하더라고요.”


내 동생이지만 지독히도 모자란 사람이다.


“시원이는 토했던 거 엄청 오랫동안 죄송해했어요.”

“그래서 직접 뵙고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태완이가 자기가 집에서 왕이라 괜찮다고 잊으라고 자꾸 막아서 타이밍을 놓쳤어요.”


잘못하면 집에 오자마자 무릎 꿇는 왕도 있나? 이 얘기를 알면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까 간 거 아니었어요?”


션둥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결혼식 두 탕이라서요. 다른 결혼식장 갔다 왔어요. 그나저나 아까 화장실에 저 일부러 따라오신 거죠? 그러실 만해요.”


천천히 이성이 살아나자 부끄러움도 함께 일었다.

“아무래도 오해하신 거 같아서 해명하러 왔어요.”


시원이를 이 정도로 가까이, 오래 보는 건 처음이다. 이렇게 보니 사람이 참 착하고 야무져 보인다. 이런 사람을 의심한 나도 참 그렇다. 아니, 박태완이 문제다.


“누나! 아직 멀었어?”


이곳으로 다가오는 동생이 보였다. 지금 우리 셋이 같이 있어도 괜찮은 건지 생각했다. 배우자와 전 애인, 그리고 친누나 조합이라.


“빨리 가자. 이분은 누구셔?”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시원을 보며 녀석이 말했다. 태완을 제외한 우리 셋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천천히 시원의 몸을 돌렸다. 왜 너만 조수석에 앉는지 기억났니.